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맛있는 텍스트

J.R.R. 톨킨, <<호빗>>, 씨앗을 뿌리는 사람, 2007(개정판).

by 마들렌23 2023. 6. 15.

제목: 호빗

저자: J.R.R 톨킨

옮긴이: 이미애

발행처: 씨앗을 뿌리는 사람

발행일: 2007년 6월 3일(개정판)

 

 

J.R.R. 톨킨&#44; 호빗&#44; 씨앗을 뿌리는 사람&#44; 2007(개정판).
호빗 표지

 

<<호빗>>은 호빗이라는 가상의 종족인 빌보 배긴스가 모험을 거쳐 영웅적인 인물로 성장하는 이야기다. 옮긴이의 말에 따르면 사실 <<호빗>>은 톨킨이 카펫에 난 구멍을 보다가 우연히 떠올린 이야기로 자녀들을 위한 동화였다고 한다. 그러나 지금에 이르러서는 주로 <<반지의 제왕>> 시리즈의 시작이 되는 전사(前史)로서의 이미지가 강하다. 톨킨의 모든 판타지 서사의 배경이 되는 '가운데땅'(middle-earth, 북유럽 신화의 미드가르드에 영향을 받은 것으로 알려진)과 각종 종족들의 설정이 시작되는 소설이기도 하고, <<반지의 제왕>>에서 이야기를 추동하는 핵심 소재인 절대 반지가 <<호빗>>에서 세상 밖으로 나오게 되는 계기를 맞기 때문이다. 이미 오래되고 유명한 소설인 데다 3부작 영화까지 있으니 알 만한 사람들은 내용을 다 알겠지만, 그래도 여기부터는 스포일러 주의!

빌보는 안정적이고 평온한 삶에 만족하며 지내고 있지만(호빗들은 모험 같은 걸 위해 마을을 떠나지 않고 조용하고 평화롭게 지내는 이들을 존경하는데, 빌보의 아버지 집안이 꼭 그런 집안이어서 주민들의 존경을 받았다.), 사실 그에게는 꼭 한 두명씩 모험가가 나오곤 했던 어머니 집안의 혈통으로부터 물려받은 여행가의 성질이 숨어있다. 이런 빌보에게 마법사 간달프가 찾아와 여정에 참여하길 요청하고, 빌보는 어쩌다 보니 13명의 난쟁이들과 함께 사악한 용 스마우그를 죽이고 그가 빼앗아 차지한 난쟁이들의 궁전과 그 안의 보물들을 찾으러 모험을 떠나게 된다. 난쟁이들은 처음에는 빌보를 무시하지만, 우연히 골룸을 마주하고 절대 반지를 얻게 된 이후 빌보는 본인의 기지로 여러 어려움을 해결하는 모습을 보이며 점차 동료들에게 모험가이자 능력 있는 좀도둑으로 인정받게 된다. 우여곡절 끝에 그들은 비밀출입구를 통해 스마우그가 있는 난쟁이들의 궁전에 칩입하고, 스마우그는 이들이 호수 마을 인간들이라고 생각해서 호수 마을을 공격했다가 옛 기리온 왕조의 후손인 바르드의 활에 죽는다. 그러나 스마우그의 보물을 두고 난쟁이, 인간, 요정 간의 갈등이 발생해 전쟁이 일어날 상황이 된다. 그러자 빌보는 몰래 훔쳐두었던, 난쟁이들이 가장 되찾고 싶어 했던 유물을 바르드와 요정왕 연합에 전달하며 평화적 협상을 도우려 한다. 그러던 와중 여정의 중간에 일행을 떠났던 간달프가 돌아와 고블린과 와르그(사악한 늑대들)의 연합이 이들을 공격하려 군대를 이끌고 오고 있다는 소식을 전하고, 이들을 물리치기 위해 갈등하던 세 종족은 연합하게 된다. 이들의 전투는 다섯 군대 전투라고 불렸으며, 악한 존재들인 고블린과 와르그의 대패로 끝나게 된다. 이후 빌보는 여정에서 만났던 모든 친구들의 환송을 받으며 집으로 돌아와 나름대로 평온한 여생을 보낸다.

전에 <<존재하지 않는 것들의 세계사>>를 읽으면서 톨킨의 작품을 다시 읽고 싶어졌다고 했었는데, 그래서 정말 다시 읽어봤다. 아주 예전, 그러니까 초등학생 때(! 이렇게 써놓고 보니 정말 까마득하다) 읽고 나서 이번이 두 번째다. 어릴 때 읽은 책들이 으레 그렇듯이, 책 내용 전체를 다 기억하기보다는 인상적인 장면이나 이미지, 그때 당시의 이해력을 바탕으로 뇌리에 남은 책에 대한 이미지를 주로 기억하는데, <<호빗>>은 왜인지 무섭다는 인상이 있었던 것 같다. 고블린이나 스마우그 때문일까? 혹은 그때 읽었던 책에 있던 일러스트 때문일지도. 이유는 기억이 나지 않는다. 그런데 이번에 다시 읽어보니, 생각보다 훨씬 밝은 이야기라는 걸 알 수 있었다.

여기에는 주인공인 빌보의 영향이 크다. 빌보는 재물에 많은 욕심을 부리거나 명예욕이 있는 성격이 아니라 기본적으로 소탈하고 작은 안락함에 만족하는 삶을 사는 호빗이다. 그래서 여행 초기에 튀어나오는 불평도 소박하고 안락한 자신의 집을 그리워하는 내용이 많고, 명예나 권위보다는 아름다운 자연, 편히 쉴 수 있는 숙소와 친절 등을 가장 기뻐하며, 이런 곳에서 빌보는 여유롭고 수용적인 태도를 보인다. 빌보가 여정 중에 이런 곳을 거칠 때면 독자들도 이런 전원적인 분위기를 경험하면서 여유로워질 수 있는 것이다. 그리고 이런 빌보의 성향과 가치관이 결국 빌보의 영웅적 행위를 이끌어낸다. 처음에는 본인의 욕심으로 훔쳐둔 난쟁이들의 유물이었지만 평화를 위해 유물을 망설임 없이 포기하는 선택, 모험의 대가로 얻은 재물들이 자신이 관리하기에 지나치게 많다고 판단하고 과하게 욕심내지 않으며 인간들을 돕기 위해 자기 몫을 선뜻 내주는 선택은 빌보의 우선적 가치가 어디에 있는지 단적으로 보여준다. 이런 점에서 어쩌면 빌보를 위대한 평범성의 상징이라고 볼 수도 있을 것이다.

한편, <<호빗>>자체만으로도 톨킨의 판타지 서사의 구조를 어느 정도 엿볼 수 있는데, 능력도 성격도 평범한 빌보가 여정을 거치면서 자신도 모르고 있던 자기 내면의 용기와 가치를 점차 발견해나간다는 이야기가 전형적인 영웅 서사 구조를 따르고 있기 때문이다. 평범한 듯 보이지만 실은 특별한 혈통을 가지고 있는 주인공이, 우연하고 갑작스럽게 마주한 어떤 계기를 통해 머물던 집을 떠나 자신이 알지 못하는 새로운 곳을 향해 여정을 떠나고, 조력자와 적대자를 만나며, 여정을 통해 능력을 얻고, 추구하는 목표를 어떤 형태로든 달성해, 존재론적 변화를 이룬 상태로 원래의 공간에 귀환한다는 식이다. 고대의 신화로부터 이어져 온 유구한 이야기 구조이자 현대에는 벗어나려는 클리셰까지 되어버렸지만, 클리셰가 된 데에는 다 이유가 있는 법이다. 생각해 보면 톨킨이 '가운데땅' 소설들을 통해 등장시킨 여러 다양한 판타지 종족들도 사실 북유럽의 신화와 전설 속의 존재들을 바탕으로 재가공하고 설정을 더해서 만든 것인데, 지금 판타지 장르 서사에서는 톨킨의 설정이 상당 부분 클리셰 혹은 배경 지식처럼 사용되는 걸 보면 참 파급력이 대단한 소설들을 쓴 작가라는 걸 새삼 느낀다.

일설에는 톨킨이 '가운데땅' 이야기를 위해 만든 가상의 언어에 대한 설정이 아주 자세해서 언어학 논문을 쓸 수 있을 정도라고 한다. (물론 톨킨이 언어학 교수였던 영향도 있겠지만) 톨킨이 자신이 창조한 세계의 세계관 설정에 얼마나 공을 들였는지를 단적으로 말해주는 이야기다.

설정 마니아인 작가의 소설을 읽으면서 세계관 설정에 대한 이야기를 안 할 수는 없다. 이번에 소설을 읽으면서 새롭게 관심을 두고 본 설정이 있다면, 선악의 구분에 대한 것이었다.

<<호빗>>의 바탕이 되는 '가운데땅'의 세계관에서는 선한 종족과 악한 종족의 구분이 아주 분명하게 구분되며, 세계관 내의 모든 존재들이 상식적으로 이 구분을 알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여기서 선과 악이 개별 존재의 성격이나 행위로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종족적으로 이미 규정되어 있다는 점이 특징적으로 다가왔다. 예를 들어, 난쟁이들에 대한 이야기를 해 볼 수 있다. 소설 후반부에 가면 난쟁이들이(특히 그들의 왕이) 스마우그의 보물에 대해 속물적인 욕심을 매우 강하게 드러내면서, (비록 스마우그의 오해로부터 비롯된 피해였지만) 인간들이 입은 피해에 대해서도 전혀 보상하거나 도울 생각이 없고 오히려 싸움을 불사해서라도 재물을 지키려 하는 등 그다지 선하다고 할 수는 없는 모습을 보인다. 그런데 세계관 내에서 악한 종족이라고 여겨지는 고블린과 와르그가 나타나자(이들은 빌보 일행이 여정 중일 때 그들을 공격했다가 반격당한 뒤 그들에게 복수하려 했다), 갈등의 주축으로 여겨지던 난쟁이들은 금세 선한 종족이라는 분명한 카테고리 안으로 들어오게 되고 마찬가지로 선한 종족인 인간과 요정과 연합해 악한 종족들과 싸우는 것이다. 게다가 역자 후기에 따르면, <<호빗>> 이후 '가운데땅'의 서사가 더 진행되면서 <<호빗>>에 등장한 스마우그 처치와 다섯 군대 전투가 절대 반지와 사우론을 중심으로 악의 세력들이 결집하기 전에 조금이라도 그 세력을 줄여놓기 위한 큰 계획의 일부였다는 식으로 그 의미가 추가되었다고 한다.

이런 점들을 고려했을 때 톨킨의 세계관은 한 종족의 선/악을 분명히 구분하는 방식을 취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렇다면 과연 그 기준이 뭘까?

이를 짐작해보기 위해서는 먼저 두 세력 간의 차이를 살펴봐야 할 것이다. 내가 느끼기에 가운데땅 세계관 속 선한 종족과 악한 종족 간의 주목할 만한 차이점은, 좀 이상하게 들릴 수도 있겠지만, 상대를 먹을 수 있는 대상으로 보는가의 여부인 것 같다. 선 세력에 포함된 다양한 종족들(인간, 난쟁이, 요정 등)은 생활환경이나 방식에서 차이를 보이지만, 식생활 부분에서는 인간과 유사하게 동물을 사냥하고 과일을 따고 요리를 해서 먹는다. 또 선악 세력의 구분과 상관없이, 혹은 신체적 물리적으로 가능한지 여부와 상관없이, 일정 수준의 지성을 가지고 있는 종족들을 잡아먹을 수 있는 대상으로 보지 않는다. 예를 들어 선한 종족으로 여겨지는 거대 독수리들은 신체적 크기나 능력 상 충분히 호빗과 난쟁이들을 잡아먹을 수 있지만 결코 그러지 않고 그럴 생각조차 하지 않는다. 반면 악한 종족으로 여겨지는 트롤, 고블린, 와르그, 거대 거미들은 종족을 가리지 않고 자신들과 (언어적) 의사소통이 가능한 호빗이나 난쟁이들까지 먹이로 여기며 사냥하려 든다. 선한 종족들도 전쟁이나 다툼의 상황에서 상대를 죽이거나 죽이려 들 수 있지만, 자신이 죽인 지성체를 먹지 않는다는, 최소한의 질서 혹은 문명화된 도덕적 태도를 유지하고 있다는 것이다. 즉 이 세계관에서 선과 악의 이분법적 대립은 문명-질서와 야만-혼돈의 대립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이러한 구분의 기준이 인간 중심적이라는 점에서, <<호빗>>에 등장하는 다양한 판타지 종족들은 인간이 아닌 다른 종에 대한 상상의 산물이기보다는 다른 모습을 한 인간을 상상한 것에 가깝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사실 톨킨은 독실한 기독교인이었고 그의 소설에는 이러한 그의 가치관이 반영되어 있다고 볼 수 있다. 이와 관련한 논문들이 있어서 살짝 읽어봤는데, 여기서는 천연희의 <톨킨과 루이스의 자연법에 대한 해석>이라는 논문을 참고해보려고 한다. [각주:1] 내가 이해한 바에 따르면 그는 세계의 다양한 신화와 전설들도 결국 기독교의 하나님과 복음에 대한 인간의 추구가 그 안에 숨어 있기 때문에 고대 신화들로부터도 이를 배울 수 있다고 생각했고(241-242), 이러한 신화를 바탕으로 창조한 자신의 판타지 세계를 통해서도 신의 창조에 대한 흔적을 보여줄 수 있다고 여겼던 것 같다(245). 그리고 이를 통해 "객관적인 도덕성의 기준, 즉 야만성과 무례함을 벗어나기 위해 인간에게 필수적이며 모든 인간에게 적용되는 자연법의 근거와 인생에 관한 중요한 경험과 교훈을 찾고자 했다."(242) 여기서 자연법이란 시대와 문화를 초월해 존재하는 보편적 가치, 인간 본성에 내재된 자연스럽고 절대적인 도덕 질서라고 할 수 있다.(242) 이러한 관점에서 본다면, 가운데땅 세계관에서 드러나는 분명한 선악의 이분법과 두 세력 사이의 다툼이라는 구조는 신이 부여한 절대적 도덕성이 존재하며, 기독교적 진리를 통해 절대적 도덕성을 일깨운 인간이 야만-악으로부터 승리한다는 톨킨의 기독교적 신념을 반영하고 있다고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소설이 영국에서 처음 출간된 게 1937년이라고 한다. 20세기 초에 나온 소설이 21세기인 지금도 판타지 장르의 필독서(?)처럼 여겨지고 있다고 생각하니 상당히 묘한 기분이 든다. 게다가 처음에는 가볍게 읽기 시작했고 순전히 이야기를 즐겼지만, 사실 신화나 영웅 서사의 측면에서든 기독교적인 관점에서든 생각보다 해석할 여지가 많은 소설이라는 점에서 <<호빗>>을 다시 읽는 건 꽤 흥미로운 독서 경험이었다.

 

 


 

  1. 천연희, <톨킨과 루이스의 자연법에 대한 해석>, <<세계문학비교연구>>제33집, 세계문학비교학회, 2010, pp.237-254. 이후 해당 문단에서 인용 시에는 쪽수만 표기한다. [본문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