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맛있는 텍스트

데이비드 크리스털, <<언어의 역사>>, 소소의책, 2020.

by 마들렌23 2023. 6. 21.

제목: 언어의 역사 (말과 글에 관한 궁금증을 풀다)

원제: A Little Book of Language

저자: 데이비드 크리스털

옮긴이: 서순승

발행처: 소소의책

발행일: 2020년 6월 17일

 

 

데이비드 크리스털&#44; &lt;언어의 역사&gt;&#44; 소소의책&#44; 2020.
언어의 역사(표지)

 

 

<<언어의 역사>>는 언어의 역사뿐만 아니라 언어학 전반의 영역을 다루고 있는, 언어학 입문 교양서다. 한 개인의 언어 발달 및 학습 과정, (영어를 중심으로) 통시적 관점에서 언어의 변이 과정, 다양한 종류의 단어들과 그 어원, 디지털 시대를 맞이한 현대의 언어, 소통이라는 언어의 목적을 추구하는 다양한 활용 형태(정치, 문학 등), 언어학이라는 학문 영역에 대한 소개 등의 다양한 내용으로 이루어져 있다.

 

총 40 챕터로 구성되어 있어 길이는 꽤 되지만, 문체가 복잡하지 않고 내용도 이해하기 쉽게 설명되어 있어서 잘 읽힌다. 구체적인 언어학 연구자나 연구 내용 혹은 이론들을 언급하기보다는 언어학에 대한 기본적인 개념이 없어도 누구나 이해할 수 있도록 아주 쉽게 풀어서 설명하고 있기 때문이다. 또 각 챕터 별로 상이한 내용을 다루는 듯 보이지만 실제로 읽어보면 챕터와 챕터 사이의 연결성도 잘 확보되어 있는 편이라 읽는 중간에 쉽게 끊을 수 없는 책이다.

전반부, 챕터 1 베이비 토크에서 챕터 13 이중 언어 사용까지 언어 발달에 대한 내용이 흥미로웠다.

 

아이가 자기만의 정체성을 가진 한 개체로서의 인간이 되기까지 거치는, 기초적인 수준의 언어적 발달과 학습부터 지역 방언 혹은 다중 언어 사용자로서의 정체성을 확립하게 되기까지의 일련의 과정을 따라간다고 보면 된다. 언어학이 흥미로운 부분 중 하나는, 평소에는 의식하지 못하고 언어를 사용하고 있지만 언어학의 관점을 따라 살펴봤을 때 나의 언어생활이 얼마나 복잡한 메커니즘과 과정을 거쳐 학습된 능력을 바탕으로 이루어지고 있는지 깨닫는 지점이라고 생각한다.

 

예를 들어, 챕터 7에서는 대화를 하기 위해서 아이가 배워야 하는 것들이 무엇인지 살펴보는데, 우리가 일상생활을 하면서 자연스럽게 하는 대화들도 그 구조를 자세히 나누어 살펴보면 그것이 이루어지기 위해서 각 개인에게 요구되는 능력이 상당히 복잡하다는 걸 알 수 있다. 아이가 대화를 하기 위해서는 일단 자신이 사용하는 언어의 소리(발음법)를 알아야 하고, 수천 개의 단어를 익혀야 하며, 문장 구성법(문법)도 알아야 한다. 기본적인 언어 능력을 갖춘 뒤에는 대화가 어떻게 이루어지는지 그 법칙을 익혀야 한다. 대화의 기본 법칙은 서로 교대로 말을 하며 말을 주고받는 것이다. 너무나 당연한 말이지만, 아이는 이 패턴을 학습해야 한다. 또 사회적 교류를 위해 필요한 언어 예절과 표현들을 배워야 하고, 상대의 이야기를 듣는 법과 그에 대해 즉각적으로 피드백하는 방식(고개를 끄덕이거나, 짧은 맞장구를 치는 등의 적극적 반응)을 익혀야 한다. 그 뒤로는 행간을 읽는 법을 배워야 한다. 직설적이지 않고 간접적인 방식으로 전달하는 의사표현을 이해할 수 있어야 하는 것이다. 당연한 이야기들을 늘어놓은 것처럼 들릴 수도 있지만, 평소에 당연하게 여기던 것들을 당연하지 않게 바라보고 단계를 나누어보는 시각의 새로움이 언어 발달 연구의 매력이라면 매력 아닐까.

전반부의 내용들도 아주 흥미로웠지만, 개인적으로는 후반부의 디지털 시대의 언어와 관련된 부분들(챕터 29 전자혁명-챕터 31 놀이 언어)에 주의가 끌렸다.

 

언어학자로서 언어의 변화에 민감하면서도 열린 태도를 가지고 있는 저자는, 디지털 시대의 대표적인 새로운 언어생활이라고 할 수 있는 문자메시지에서 (문자)언어가 어떻게 변화하고 활용되고 있으며 기존의 언어 소통과 어떤 차이점을 보이는지 사례를 바탕으로 구체적으로 분석한다.

 

특히 문자메시지를 비롯한 온라인 언어에서 보이는 약어들에 대해 (흔히 온라인 언어 사용에 제기되는 언어 파괴 혹은 철자법에 대한 우려와는 달리) 이러한 새로운 언어들은 생각보다 기존의 언어 규칙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았으며, 약어들도 예전부터 사용되어 오던 방식(주로 말장난이나 게임의 재미를 위해)을 따라 생성되었음을 보여준다.

중요한 지점은, 이런 약어와 같이 특정 글자를 필요에 맞게 생략하고서도 의사소통에 문제가 없으려면 사용자들이 생략된 원래 철자를 알아야 한다는 조건이 전제된다는 것이다. 이것은 일종의 언어유희이다. 언어유희는 단어의 소리, 의미, 글자의 상관관계 속에서 만들어지므로 이러한 이해가 선행되어야 가능해진다. 즉 온라인상에서의 새로운 문자 표기 방식(혹은 언어 사용 방식)에 대해 단순히 언어 파괴적이라고만 하기는 어렵다는 것이다. 언어의 유동성과 변화 가능성에 대한 저자의 열린 태도가 인상적인 부분이었다. 예전부터 있어왔던 인터넷 언어의 어법 파괴에 대한 논의와 최근 제기되고 있는 문해력 문제 등을 떠올리게 하는 부분이기도 했다.

 

언어의 변화에 대한 열린 태도와, 원활한 소통이라는 언어활동의 본래 목적을 유지 고수하기 위해 언어 규칙을 지키는 것 사이에서 균형을 잡는 일은 앞으로 어떤 형태로든 우리의 생각보다 더 중요한 일이 되지 않을까? 물론 당연한 이야기로 들리겠지만. 

사어가 되어가는 전 세계의 다양한 언어들을 보존하고 싶은 마음, 문학을 비롯한 언어 예술의 고차원성과 무한한 가능성에 대한 찬사, 언어의 복잡성을 전제로 획득되는 언어의 창조성에 대한 강조 등에서 저자가 언어와 언어학을 얼마나 사랑하는지 잘 느껴지는 책이었다.

"일단 수천여 개의 단어와 그러한 단어를 조합하여 문장으로 만드는 기본적인 원리만 익히고 나면 우리는 이전에 그 누구도 말한 적이 없는 것들을 말할 수 있다. (중략) 이와 같이 무한한 변형 생성 가능성 때문에 언어는 의사소통을 위해 인간이 사용하는 다른 수단과 확연히 구별된다."(397-399)

재미있다. 언어학을 어렵지 않게 시작해보고 싶다면 읽어볼 만한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