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이상한 수학책 (그림으로 이해하는 일상 속 수학 개념들)
원제: Math with Bad Drawings
저자: 벤 올린
옮긴이: 김성훈
발행처: 북라이프
발행일: 2020년 3월 18일
문과 중 문과, 상 문과(?)인 내가 교양 수학에 슬쩍 손을 대 봤다. 특별한 이유는 없다. 인간은 원래 자기와 너무 다른 것에도 끌림을 느끼곤 하는 법 아닌가. 아니, 오히려 나 같은 문과 인간도 재미있게 읽을 수 있는 수학책이라면 누구든 부담 없이 도전해 볼 만한 책이라는 뜻이니까 책 추천에는 더 좋을 수도 있다. 그리고 <<이상한 수학책>>이 바로 그런 책이었다.
저자는 수학 교사로 활동하면서 학생들이 수학을 어려워하는 것을 가까이서 지켜봐 온 사람이다. 그런 만큼 수학을 힘들어하고 따분하게 생각하고 싫어하는 학생들과, 그런 학생이었던 경험을 가지고 있는 어른들에게 어떻게 수학의 재미를 전할 수 있을까 고심한 것 같다. 저자는 우리가 정말 배워야 하는 것은 문제를 잘 풀기 위한 수학이 아니라 수학적으로 사고하는 방법이라고 주장한다. 그래서 책의 내용도 수식 풀이나 공식을 다루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삶에서 수학이 얽혀있는 다양한 영역들을 다루면서 흥미로운 에피소드들을 소개한다. 위트와 농담이 가득한 문체와 저자가 직접 그린 엉뚱하고 귀여운 그림들이 '수학'책을 읽는다는 데서 오는 부담감을 한껏 덜어준다.
책은 크게 5부로 구성되어 있는데,
1부 수학자처럼 생각하는 법에서는 수학과 관련된 여러 영역의 사람들(학생들, 수학자, 과학자 등)이 수학을 어떻게 생각하는지에 대해 서술한다. 저자에 따르면 수학자들에게 수학은 언어와 같으며, 수식과 기호의 디테일이 아니라 큰 덩어리로 이해하면서 "영리하게 부정확"하게 인식한다. 또 과학과 수학은 긴밀한 관련이 있고 서로 영향을 주고받지만, 수학은 현실을 시적 추상으로 바꿔 이해한다는 점에서 현실과 밀접한 과학과는 차이를 가진다.
2부 디자인 - 쓸 만한 것들의 기하학에서는 '기하학적 원칙은 현실에서 제약으로 작용하며 이 제약이 창의적인 디자인을 발생시킨다'는 관점을 바탕으로, 다양한 디자인들이 어떤 수학적/기하학적 사고 과정을 거쳐 지금의 모습으로 확정되는지에 대해 다룬다. 유클리드 기하학에서 말하는 삼각형의 성질에서 시작한 이야기는 피라미드와 현대의 건축 기술뿐만 아니라, 주사위의 모양이 왜 정육면체인지, A4 용지의 비율은 왜 지금의 비율을 가지는지, 심지어 스타워즈의 데스스타가 구체로 디자인되기까지 어떤 고민(과 다스베이더의 협박)이 있었을지 상상하는 데까지 나아간다.
3부 확률론 - 어쩌면의 수학에서는, 무작위로 일어나는 일회성 사건들로 가득 차서 모호하고 예측 불가한 실제 삶과, 무수한 시행을 가정해 장기적 평균치를 얻으므로 고요하고 차분한 이론적 세상을 연결시켜 주는 확률론에 대해 다룬다. 확률과 뗄 수 없는 관계인 로또 사업이 돌아가는 구조를 살펴보기도 하고, 동전 던지기의 특별한/평범한 결과에 대한 이야기가 유전학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또 보험의 작동 원리와 발전 과정에 대해 이야기하기도 하고, 주사위 굴리기 결과의 독립성과 종속성에 대한 이야기에서 시작해, 실제로는 종속적인 사건을 독립적이라고 잘못 가정하는 것이 어떻게 미국의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까지 이어지는지 설명하기도 한다. 특히 경제와 관련된 사례들이 많이 나오는데 관심이 있는 사람은 흥미롭게 읽을 수 있는 부분이기도 하다. 모호함과 불확실성, 불가측성에 대한 접근을 다룬다는 점에서 개인적으로도 재미있게 읽었다. (관련 경제 상식의 부족에서 오는 흥미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4부 통계학 - 정직하게 거짓말하는 기술에서는, 통계학은 현실을 압축하고 생략하고 단순화하는 작업을 통해 세상을 이해하는 걸 도울 모형을 만들도록 해 준다는 점을 소개하며 시작한다. 데이터 집합을 (혹은 그 특성을) 단순화해 표현하는 다양한 방식을 의미하는 통계학적 방식들과 그 한계에 대해 먼저 설명하고, 그 뒤로는 야구 선수를 평가하는 통계 모형, 과학 실험에서 상관 계수 P값을 활용하는 데 있어서 실질적/현실적으로 발생하는(발생할 수 있는) 왜곡, 교육 정책 측면에서 평가를 위한 통계 모형을 만들면서 발생한 여러 현실적이고 인간적인 문제들, 디지털 인문학이라는 영역에서 통계학이 문학을 데이터 집합으로 바꾸어 이해하는 새로운 방식들을 소개한다. 개인적으로는 이 챕터를 가장 재미있게 읽었는데, 저자가 말하는 '세상을 보는 언어로서의 수학'이라는 특징이 가장 단적으로 드러나는 영역이 통계학이라는 느낌을 많이 받았기 때문이다. 날 것의 데이터 집단을 통계적인 처리 과정을 거쳐 이해하기 쉽게 표현하는데, 그 과정을 어떻게 처리하느냐에 따라서 전혀 다르게 표현하고 해석할 수 있게 된다는 게 어려우면서도 흥미로웠다. 이런 점은 정말 수학이나 현실의 삶이나 크게 다르지 않은 것 같기도 하다.
5부 전환점 - 한 걸음의 힘에서는 연속 변수와 이산 변수 개념을 인생에서 결정적인 전환점을 맞이하는 상황에 비유하는 것을 시작으로, 한계 효용과 시장 균형, 소득세 세율 결정 방식에 대한 이야기 등 경제 영역의 이야기로 나아간다. 또 미국의 대선 선거 방식인 선거인단 투표가 수학적/정치적으로 결과에 영향을 줄 수 있는 많은 분기점을 가지고 있는 제도임을 설명하기도 한다. 내가 이 챕터에서 특히 흥미롭게 읽은 부분은 카오스 이론에 대해 다루는 부분이었다. 카오스 이론은 에드워드 로렌츠가 날씨 컴퓨터 시뮬레이션 모형을 만들고서 과거의 날씨 시퀀스를 다시 만들어보려 하던 중 입력 수치들을 미세하게 반올림했다가 전혀 다른 결과들이 연쇄적으로 일어나는 것으로부터 시작된 이론이라고 할 수 있다. 저자는 인간의 역사도 카오스 이론의 관점으로 바라본다. 개인의 일생에 있어서도, 군중으로서의 인간이 거쳐온 역사의 흐름도, 무수한 요인들이 엄청난 복잡성을 가지고 서로 영향을 주고 받는 맥락 속에서 움직인다는 것이다. 카오스에도 여러 형태가 있다. 저자는 이런 다양한 방식으로 혼란스러운 카오스 개념들을 소개하면서, 이 모든 형태가 인간의 역사를 이해하는 비유로 적용될 수 있음을 주장한다. 이 부분이 전체 책의 가장 마지막 내용인데, 수학에서 시작했지만 상당히 인문학적인 고민으로 끝나고 있다. 그래서 더 흥미롭게 읽을 수 있었다.
전체적으로 수학적 설명은 이해하기 쉽게 풀어 쓰면서, 친숙하고 가깝게 느끼는 대상들을 수학이라는 관점을 통해 새롭게 바라보는 경험으로 안내하는 책이라는 인상을 받았다. 특히 후반부로 갈수록 인문사회학적 고민들이 함께 묻어나는 느낌이어서, 수학과 인문학이라는 두 영역의 거리감에 대해 재고해 보는 계기도 되어준다. 수학과 그다지 친하지 않아도 왠지 교양으로의 수학에 도전해보고 싶다는 생각을 가진 사람들에게 시작하는 책으로 이만하면 훌륭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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