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존재하지 않는 것들의 세계사 (인류를 바꾼 98가지 신화이야기)
저자: 양승욱
발행처: 탐나는책
발행일: 2021년 9월 23일
처음 <존재하지 않는 것들의 세계사>라는 책을 마주했을 때 했던 생각은 제목을 잘 지은 것 같다는 것이었다. 일단 '존재하지 않는 것들'이라는 표현이 뭘 말하는 건지 궁금증을 자아냈다. 왠지 신비롭고 흥미로울 것 같은 게 판타지와 환상과 신화를 좋아하는 내 취향에 잘 맞을 것 같은 표현이었다. 거기다 세계사라고 하니, 마치 설화적 존재들과 관련된 일련의 역사적 흐름을 제시해 줄 것 같지 않은가. 내 취향을 저격하기 위한 책이라는 느낌이라 지나칠 수 없었다. 마침 글은 안 써지고 의욕도 떨어지려던 상태라 난감했었기에, 기분도 전환할 겸 얼른 읽기 시작했다.
결과적으로, 제목은 세계사지만 실질적인 내용은 설화 속 존재들을 모아둔 백과사전 콘셉트에 가까운 책이었다. 주로 유럽 쪽의 신화와 전설에 등장하는 존재들을 소개하고 있지만 간간히 아시아 쪽의 설화에 등장하는 존재들도 다룬다. 각각의 글은 어느 지역에서 유래했고 외모는 어떤지 소개하는 데에서 시작해, 그 존재에 얽힌 설화의 내용을 요약해서 제시하고, 이 존재와 관련된 풍습이나 문화 예술 텍스트에 반영된 사례가 있다면 간략히 소개하는 식의 구성을 따르고 있다. 다양한 이야기들을 다루기 때문에 가볍고 흥미롭게 읽을 수 있는 책이었다.
저자는 환상적 존재들을 다섯 가지 범주로 나눠서 제시하고 있다. 내가 읽으면서 이해한 바로는, 1부 생명의 파수꾼들에서는 생명의 원천이 되는 자연, 인간이 터전 삼아 살아가는 자연환경과 관련되는 존재들을 주로 소개하고 있고, 2부 유혹의 손짓에서는 매혹적이지만 죽음을 부르기도 하는 양가적 측면을 가진 자연을 은유하는 듯한 존재들이 많이 등장한다. 3부 공포 유발자들에서 소개하는 존재들은 주로 죽음 혹은 임박한 죽음을 알리기에 공포를 일으키는 존재들이 많았다. 4부 보이지 않는 이웃의 경우 집과 노동(집안일, 광산 등)에 관련된 존재들이 많이 소개되었고, 5부 물리와 마법의 경계에서는 실제 역사 혹은 실제 삶과 설화의 경계가 모호한 이야기 속에 등장하는 환상적 존재들이 주로 다루어졌다. 물론 이런 구분은 칼로 자르듯 딱 떨어지는 게 아니니 누군가는 이 책에서 제시하는 분류에 동의하지 못할 수도 있다. 그래도 여러 지역의 다종다양한 설화들을 읽으면서 이 책에서 이들을 왜 하나의 공통된 집합으로 묶었을까 생각해 보는 것도 나름 즐거운 경험 아닐까?
저자가 서론에서 "모든 예비 창작자를 위한 참고서"라고 소개한 만큼, 판타지 장르를 창작하고 싶은 사람에게 영감을 제공할 수 있는 책이라고 할 수 있다. 다만 각각의 내용을 간략하게 소개하고 있기 때문에, 빠르고 가볍게 훑어보듯 읽어보면서 관심이 가는 내용을 추가적으로 조사하는 식으로 활용해야 할 것 같다. 다양한 삽화를 제시하고 있으니 삽화 중심으로 훑어보면서 흥미가 가는 이야기들만 읽어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이다. 혹은 이미 알고 있는 존재들 위주로 살펴보는 건 어떨까? 판타지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익숙한 이름들이 많이 있을 것이다. 나는 개인적으로 이 책을 읽으면서 아주 어릴 때 읽었던 톨킨의 <호빗>을 다시 읽어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익숙한 이야기를 다시 보면서 잊고 있었던 소설들이나 아직 읽어보지 못한 소설들을 떠올리고 읽어보는 기회로 삼는 것도 재미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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