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맛있는 텍스트

황천춘, <<한 권으로 읽는 인도신화>>, 불광출판사, 2020.

by 마들렌23 2023. 10. 23.

제목: 한 권으로 읽는 인도신화(신화부터 설화, 영웅 서사시까지 이야기로 읽는 인도)

저자: 황천춘(黃晨淳)

옮긴이: 정주은

발행처: 불광출판사

발행일: 2020년 9월 2일

 

황천춘&#44; &lt;&lt;한 권으로 읽는 인도신화&gt;&gt;&#44; 불광출판사&#44; 2020.
표지

 

어릴 때 가장 많이 접해서 익숙한 그리스 신화나 마블 영화의 영향으로 급속도로 가까워진 북유럽 신화는, 속속들이 다 안다고 할 수는 없어도 주요 신들의 이름과 중요한 사건들은 어느 정도 알고 있다. 그래서 관련된 책을 읽을 때 어느 정도의 배경 지식을 가지고 시작하기 때문에 내용을 빠르게 이해할 수 있다.

 

이번에 이 사실을 크게 느꼈는데, 인도 신화에 대한 배경 지식이 많지 않다 보니 책을 읽는 내내 내용을 파악하는 데 시간이 걸렸다. 특히 인도 신화는 신이 워낙 많아서 이름과 관계도를 다 기억하지 못하다 보니 내용을 읽다가 몇 번이고 앞으로 돌아가서 언급된 이름을 찾아보는 일이 벌어졌다. 특히 이 책, <<한 권으로 읽는 인도신화>>는 베다를 비롯한 다양한 고대 인도의 기록들을 요약해서 최대한 옮겨두는 것을 목적으로 하고 있는 만큼, 적극적인 저자의 개입 혹은 체계화나 도표를 기대할 수 없으며 내용을 열심히 따라가는 수밖에 없다. 그래도 이렇게 앞뒤로 왔다 갔다 하면서 읽다 보면 스스로 어느 순간 신들의 이름과 관계가 기억나고 이해가 되는 게 아닐까 기대도 했는데, 솔직히 말하자면 그런 드라마틱한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원래 알고 있던 세 신, 브라흐마, 비슈누, 시바(힌두교에서는 이들을 트리무르티라고 부르며, 이 세 신이 삼위일체이자 우주의 원리를 이룬다고 믿는다)에 관해서 조금 더 알게 되었고, 이들과 관련된 신들 몇몇의 이름과 간단하고 파편적인 정보 정도만 익혔다. 앞으로 비슷한 다른 책들을 조금씩 더 읽다 보면 좀 나아지지 않을까 기대한다.

이 책은 크게 3개의 장으로 이루어져 있다. 1장에서는 세상의 창조부터 신들의 이야기들을 다루고, 2장에서는 힌두 신화 설화집 세 권(<자타카>, <판차탄트라>, <카타사리트사가라>)의 다양한 설화들을 소개하고, 3장에서는 가장 유명한 영웅 서사시 두 편(<라마야나>, <마하바라타>)의 내용을 소개한다.

1장에서는 개인적으로 창세신화가 가장 흥미로웠다. 인종, 지역, 종교 간의 세력 경쟁에 따라 신과 신화들이 섞이고 이들 간의 위계질서 혹은 관계가 변형되어 온 것은 인도신화도 다른 신화들과 마찬가지이기 때문에 내용에 있어서 다양한 버전이 있는 걸로 알고 있다. 나는 인도 신화에서 세상은 비슈누가 뱀 아난타를 타고 꾸고 있는 꿈이고 비슈누가 인도 신화에서 최고신이라고 들었었는데, 이 책에서 소개하는 세상의 창조신은 브라흐마였다. 브라흐마가 깨어 있으면 세상이 움직이지만 브라흐마가 잠들면 세상이 움직이지 않아 사라지게 된다고 한다. 힌두교에서는 비슈누와 브라흐마는 우주의 원리를 이루는 하나이자 셋인 신 중 둘인데, 브라흐마의 창세 과정은 비슈누와는 반대되는 작용으로 세상이 생겼다 없어진다는 내용이라 그 대비가 흥미롭게 다가왔다. 또 창조의 과정에 있어서도, 다른 신화에서 혼돈 속에서 땅과 하늘이 생기거나 혹은 빛과 어둠이 생기거나 하는 것과는 좀 달랐다. 브라흐마는 “실재하면서 실재하지 않는 마음”(20)을 가장 먼저 창조한다. 그런 뒤 각자의 속성을 가진 다섯 가지 원소(공간-소리, 바람-촉감, 불-색깔, 물-맛, 땅-냄새)를 최초로 만들고 이를 바탕으로 만물을 만들었다고 한다. 마음 혹은 인식과 같은 정신적이고 추상적인 요소가 물질적인 요소의 창조에 선행한다는 상상력이 인도 철학의 태도를 단적으로 반영하는 것 같았다.(물론 나는 인도 철학을 잘 모르고, 학생 때 여기저기서 들은 상식과 이미지 정도만 가지고 있다.)

이 세계관에서 인간과 신(데바), 브라흐마의 시간의 흐름은 서로 상이하기 때문에 브라흐마의 하루가 인간의 시간으로는 아주 긴 시간인데, 이런 상상을 위해 큰 숫자의 개념이 등장하는 부분이 흥미로웠다. 또 지금 세상은 이미 7번 윤회한 세상이고 우주의 최고신인 브라흐마는 “마치 놀이처럼 세상을 창조하고 멸망시키며 끊임없이 우주를 윤회”(20)시킨다는 세계관도, 세상의 멸망에 그다지 전전긍긍하지 않고 초탈한 태도(?) 같은 것이 느껴져서 흥미로웠다. 북유럽 신화에서는 세상의 멸망을 일으킬 라그나로크를 엄청난 위협으로 여기고, 세상이 멸망한 이후 다시 새로운 세상이 시작될 때에도 라그나로크 이전 세상과의 연결성이 어느 정도 유지되는 면이 있어서(로키의 계략에 의해 죽어서 헬에 머무르던 발드르가 부활해 돌아오고, 오딘의 아들 중 살아남은 이들이 있어서 그들이 새로운 세상을 다스리는 신이 되기 때문이다), 멸망에 대한 상상력의 측면에서 인도 신화와는 차이를 보인다. 인도 신화에서 파괴 혹은 멸망이 무조건적인 악 혹은 나쁜 것으로 다루어지지 않는다는 점이 특징적이다.

비슷한 맥락으로 시바에 대한 내용도 인상 깊었다. 이전까지 시바는 파괴의 신이라고만 알고 있었는데, 이건 지나치게 단순화된 이해였고 사실 시바는 꽤나 복합적인 의미를 가진 신이었다. 시바는 “세상을 창조하고 파괴하는 신”(54)으로, 시바링가(시바의 남근을 의미하는 조형물)로 대변되는 강렬한 생식력을 가진 신이기도 하고, 우주의 진리와 회전을 상징하는 춤을 통해 세상을 불멸시키기도 하고 멸망을 완성하기도 하는 신이다. 힌두교에서는 트리무르티 중 하나로 신들의 신으로 여겨지며 마하데바라고 불리기도 한다. 역시 파괴라는 개념을 악으로 다루지 않고 세상의 주요 원리로써 신격화하는 인도 신화의 태도가 두드러지는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더해서 파괴의 신이 강한 성적 에너지와 연결된다는 점에서는 프로이트가 연상되기도 한다.)

2장에서 소개하는 세 권의 설화집 중 <자타카>는 석가모니가 싯다르타로 태어나 부처가 된 과정과, 그렇게 되기 전까지 겪은 여러 번의 윤회에서 어떤 모습으로 어떻게 덕을 쌓고 수행했는지에 대해, 즉 부처의 전생에 대한 여러 이야기를 다룬다. <판차탄트라>는 통치에 대한 교훈과 깨달음을 전달하는 이야기가 주를 이루는데 동물들이 등장하는 우화가 많고, <카타사리트사가라>는 다양한 사람들과 요괴, 동물, 환상 등의 이야기들이 다양하게 담겨 있는 설화집이다. 가장 기억에 남은 건 <판차탄트라>에서 본 악어와 원숭이 이야기이다. 별주부전 이야기와 유사했기 때문이다. 원숭이의 심장을 먹으려던 악어가, 심장을 빼서 건너편 나무에 걸어놨다는 원숭이의 거짓말에 속아 원숭이를 태우고 강을 건너가지만 원숭이는 나무에 도착하자마자 악어를 비웃으며 도망갔다는 이야기이다. 별주부전 혹은 토끼전의 근원설화인 구토설화는 불교설화의 영향을 받았다고 하는데, 그와 유사한 흔적을 인도 설화에서도 본 것 같은 기분이었다. 그 외에도 세 권 모두 전체적으로 철학적이고 교훈적인 톤이 강하면서도(특히 이야기 중간에 시가 삽입되어 있을 때가 그랬는데, 강조하고 싶은 주제의식이 시로 표현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이야기도 그런대로 흥미롭고 어느 정도 이야기의 구조를 가지고 있어서 1장보다는 빠르게 읽었던 것 같다.

3장의 영웅 서사시 두 편은 이 책을 읽기 전부터 간략한 내용 정도를 알고 있었는데, 원문을 읽은 건 아니지만 전체적인 내용을 좀 더 자세하게 읽어보는 것도 흥미로운 경험이었다. <라마야나>는 라마라는 인물(비슈누의 아바타라라고 한다)의 모험담이자 일대기라고 할 수 있는데, 중간에 락샤사(일종의 악귀, 악마)이자 랑카 섬을 다스리는 라바나에게 납치당한 자신의 아내 시타(비슈누의 아내인 락슈미 신은 비슈누가 아바타라로 인간계에 태어나면 자신도 아바타라로 환생해서 항상 그의 아내가 되었다고 하며, 시타 역시 락슈미의 아바타라라고 한다)를 구하려는 이야기가 많은 분량을 차지한다. 개인적으로는 <라마야나>에서는 원숭이 신 하누만이 가장 인상적이고 매력적인 인물이었다. 원숭이 나라의 왕이 아니라 충직한 신하인데, 나라를 도와준 라마에게 은혜를 갚기 위해 시타를 구하러 단신으로 라바나의 궁에 숨어 들어갈 만큼 의리도 있고, 재치도 있고, 능력도 있는 인물이었다. 손오공이 하누만의 영향을 받아 만들어졌다는 얘기도 들은 적이 있는데, 두 인물 모두 매력적인 캐릭터인 건 확실하다.

<마하바라타>는 쿠루 왕족이 드리타라슈트라 왕의 아들 100명과 드리타라슈트라의 동생인 판두 왕의 다섯 아들이라는 두 세력으로 나뉘어져 왕위를 두고 전쟁을 하는 이야기인데, 정말 많은 등장인물들이 전쟁 과정에서 차례로 죽을 뿐 아니라 서로 친척 관계인 경우가 많아 더 비극적이었다. 마하바라타는 매우 길어서 등장하는 인물들도 많고, 선한 왕자들과 악한 왕자들이 대립하는 구도를 가진 이야기이기 때문에 주요 인물은 판두 왕의 다섯 아들들이라고 할 수 있는데, 그중에서도 눈에 자주 띄는 주인공이라 할 수 있는 인물은 아르주나라는 왕자다. 흥미로운 점은 여기에도 비슈누의 아바타라인 크리슈나가 등장하는데, 주인공이 아니라 주인공의 조력자에 가까운 인물로 등장한다는 것이다. 크리슈나는 아르주나의 친구이자 다섯 왕자들이 전쟁에서 승리할 수 있도록 돕는 인물이다. 세상을 유지하는 신인 비슈누의 아바타라가 다섯 왕자들을 돕는 건 이들이 이기는 것이 세상의 이치에 맞았다는 뜻일까?

이 이야기에서는 일단 쿠루 왕족의 족보가 매우 복잡해서 초반부에 난관이 있었지만, 후반부로 가면 진영이 명확히 나뉘어서 이해가 쉬워졌다. 특히 <라마야나>에서는 라바나가 이야기 상의 구도에서도 악역이고 인물의 성격도 확연한 악인에 가까웠던 데 반해(물론 중간에 라바나가 다스리는 랑카 섬이 라바나가 시타를 납치해 와 전쟁이 벌어지기 전까지 평화롭고 잘 다스려지는 나라였다는 이야기가 나와서, 악인인 라바나가 나라를 잘 다스린 좋은 왕이라고 설정되어 있다는 점이 독특하다고 생각했다), <마하바라타>에서는 (물론 100명의 왕자들이 대부분 먼저 악행으로 다툼의 원인을 제공하긴 하지만) 100명의 왕자들의 진영에서 싸우는 전사들은 꼭 악한이 아닐 때도 있고(대표적으로 다섯 왕자들의 스승인 드로나), 다섯 왕자들도 항상 선하고 올바른 인물들은 아니어서(첫째인 유디슈티라는 본성은 선한 인물이지만 도박을 멈추지 못해서 형제들을 여러 고난에 처하게 하고, 둘째인 비마는 형제들의 선한 결정에 잘 따르지만 한편으로 성질이 불같고 화를 잘 내며 불필요하게 폭력적인 모습을 보이기도 하는 등), 이런 입체적인 인물들이 이야기의 몰입도를 더 높이는 것 같았다. 고대 영웅 서사시의 등장인물들이 꽤 다채로운 면을 보여줘서 흥미로운 한편, <마하바라타>는 철학적, 종교적으로도 유의미한 텍스트인데 요약본으로 줄거리만 따라가다 보니 이런 부분은 접해볼 수 없어서 아쉽기도 했다. (하지만 <마하바라타>는 이 책의 소개에 따르면 무려 10만 개의 시구로 이루어진 세계에서 가장 긴 서사시라고 하니 직접 읽어볼 엄두가 안 나기도 한다.)

사실 이번에 인도 신화를 골라 읽은 이유는, 고대 인도-유럽인들의 신앙에 대한 흥미 때문이었다. <<처음 시작하는 북유럽 신화>>에서 인도-유럽어족에 속하는 언어들에서 숫자 9에 대한 공통적인 신화적 인식을 발견할 수 있다는 내용을 읽은 후로, 여러 민족으로 분화되기 이전의 고대 인도-유럽인들의 신화 혹은 신앙에 대해 궁금해졌다.

 

말하자면 인도-유럽인 민족의 다양한 신화들의 모태가 되는, 적어도 바탕의 의식을 생성한 더 오래된 신화가 있지 않을까, 있다면 어떤 모습이었을까, 지금은 멀리 떨어진 것으로 보이는 신화들에서 일종의 의식적 공통점들을 찾을 수 있다면 그걸 바탕으로 역추적해볼 수 있지 않을까, 등의 상상을 해 보았다. 이런 점에 대해 알아보고 생각해 보려면 일단 각각의 신화를 알아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고, 그래서 인도 신화부터 읽어보기로 한 것이었다.

신화에 대한 책을 읽으면서 배경지식의 필요성을 생각하게 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그리스 로마 신화나 북유럽 신화를 읽을 때에는 미처 생각해보지 않은 부분이다. 그만큼 그리스 신화는 유명해서 쉽게 풀이된 책들도 많았고 그걸 접할 기회도 많았다는 뜻일지도 모른다. 인도 신화는 베다 경전만 해도 4가지이고, 기존 토착 민족과 이주해 온 아리안족의 신앙이 서로 세력 다툼을 한 영향이 신화의 내용에서 여러 가지 버전의 이야기로 남아 있는 경우가 많기도 했고, 또 지역별로, 혹은 종교나 종교의 하위 지파별로 다른 이야기를 하는 경우가 많은데, 그렇다 보니 큰 맥락이 잘 잡히지 않았다.(사실 아직도 파악이 제대로 안 되어 있다.)

 

그리스 신화는 호메로스가 취합해서 정리한 걸 중심으로 삼고 여기에 포함되지 않은 이본들을 익히는 식으로 정리할 수가 있는 반면, 인도 신화는 (적어도 이 책에서는) 그런 식으로 접근하지 않았는데 그러다 보니 상대적으로 정리가 잘 안 된 느낌이 들었다.

 

어쩌면 세상의 끊임없는 창조와 멸망의 순환을 상상하는 신화인 만큼, 그리스 신화와 같이 일관되고 시간 순서대로 정리되는 하나의 이야기라는 게 존재하는 것 자체가 그리 어울리지 않을지도 모른다. 어쨌든, 그래서 혼자서라도 나름의 맥락을 잡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고민하다 보니 아무래도 역사적, 문화적 이해가 어느 정도 함께 수반되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하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