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찰스 스콰이어, <<켈트 신화와 전설>>, 황소자리, 2009.

by 마들렌23 2023. 10. 31.

제목: 켈트 신화와 전설

저자: 찰스 스콰이어

옮긴이: 나영균, 전수용

발행처: 황소자리 출판사

발행일: 2009년 5월 15일

 

 

찰스 스콰이어&#44;&lt;켈트 신화와 전설&gt;&#44; 황소자리&#44; 2009.
표지

 

 

<<켈트 신화와 전설>>은 1905년 출간된 <<The Mythology of the British Island>>의 1910년 개정판본을 번역한 책이다. 저자인 찰스 스콰이어는 영국의 빅토리아 시대에 태어나 영국의 전통 신화와 전설에 대한 관심을 가졌고, 여러 고서들을 수집해 연구한 결과물로 이 책을 펴냈다고 한다. 책이 출간된 시대가 시대이니만큼 문명과 야만의 이분법적 구분 등 당시의 영국인에게는 당연하게 여겨졌을 수 있겠으나 21세기 대한민국에서 책을 읽고 있는 독자의 입장에서는 마음에 걸리는 부분이 있기도 했다.

책의 목차 앞에 있는 추천사에서는 책의 6장부터 읽기를 권하는데, 그 말을 안 듣고 1장부터 순서대로 읽어본 사람으로서 얘기하자면 아무래도 추천사의 조언을 따르는 게 좋을 것 같다. 6장부터 본격적으로 신들의 이야기가 다루어지기 때문에 재미도 있어지고, 앞의 역사, 문화, 사회적 맥락과 연구사 등을 설명하는 내용들은 어렵기도 어렵거니와 제국주의의 향기가 슬며시 나는 느낌이 다른 장들에 비해 더 강하게 나기 때문이다.

책장을 덮으면서 가장 먼저 든 생각은 읽는 것이 매우 어려웠다는 것이다. 불평하는 것처럼 들릴지도 모르겠지만, 더 열심히 읽었으면 지금보다는 덜 혼란스러웠을지도 모르지만, 어쨌든 어렵다는 게 솔직한 감상이다. 이 책은 그리 쉬운 책도 아니고, 입문서로 적당한 책도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 이유로는 여러 가지 요인들이 있는데, 일단 각종 이름들이 익숙하지 않다. 신들이나 영웅들의 이름뿐만 아니라, 다양한 지역의 이름들이 아주 많이 나오는데 들어본 것보다 처음 보는 것들이 훨씬 많아서 나열된 이름을 읽는 것만 해도 거의 정보로 얻어맞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물론 내가 지리 쪽은 나라를 불문하고 약하긴 하지만, 그런 문제가 아닌 것 같았다!)

둘째로는 신화의 이야기가 그렇게 체계적으로 정리되어 있지 않아서 여러 모로 읽는 동안 혼란스러웠다. 저자가 방대한 자료를 최대한 정리한 것 같긴 한데, 이야기 자체가 요약적으로 제시되어서 그런지, 아니면 이야기와 저자의 역사적, 문화적 분석이 섞여서 제시되는 글의 스타일 때문인지, 켈트 신화라는 이교의 문화를 기독교 신화 속에 포용하고자 하는 긴 세월 동안의 시도로 인해 기록 자체가 불분명하거나 기독교의 영향을 많이 받은 상태였던 문화적인 요인 때문인지 모르겠다.

저자가 신화의 내용을 서술하는 부분들도 있지만, 이 책의 전체적인 톤은 켈트 신화의 내용을 알기 쉽게 제시하는 것보다는 이미 어느 정도 배경 지식이 있는 상황에서 켈트 신화와 그와 연관된 켈트 문화의 내용을 분석하고 역사적인 흐름에 따라 어떻게 변화해 왔는지를 추리하는 시도에 더 초점이 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20세기 초 영국에서 출간된 책이니 만큼 출간 당시 이 책을 읽었던 독자들은 어느 정도의 배경 지식이 있었을 것으로 보인다. 켈트 신화의 다양한 요소들은 여러 변화들을 거치기는 해도 아서 왕 이야기와 같은 영웅담이나 축제들, 셰익스피어의 리어 왕을 비롯한 여러 문학 작품에서 표현 양식으로 혹은 모티브로 살아남아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21세기 한국의 독자인 나로서는 거리감이 있는 게 사실이다.

신화의 내용부터 신들과 영웅들의 이미지부터 먼저 어느 정도 정립이 되어야(더 극단적으로 말하면 신들의 이름과 어느 정도 친해지기라도 해야) 이 책을 좀 더 깊이 있게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어떤 신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도 파악하지 못한 상태로 그 신이 다른 지역에서 혹은 시간이 흐르면서 어떻게 변화해 갔는지를 이해하려 하는 건 무모함에 가깝다고 말할 수 있다.

이에 더해 고대 서양사, 더 구체적으로는 아리안 민족 혹은 인도-유럽어족이라 부르는 집단부터 시작해서 유럽 각 국가로 이어지는 역사에 대한 배경지식이 필요하다. 켈트 민족이 여러 지역으로 퍼져나가며 다른 민족으로 분화했고 그 흐름에 따라 신화도 함께 변화를 겪었기 때문이다.

지금으로서는 켈트 민족이 아일랜드와 웨일스와 브리튼 지역에 퍼져나가면서 유사한 신화가 다른 형태로 남아 있고(유사한 전사를 가진 인물들이 다른 이름이나 위상을 가지고 있는 등), 또 이후 역사적 과정을 거치면서 로마와 기독교의 영향력이 강해지는 시기에 이들에게 포함되거나 포함되기를 거부하면서 기록에 있어서 여러 형태의 변화를 거쳤다는 점(달리 말하면 신들이 신으로서의 위상을 잃고 점차 왕이나 영웅 등 인간의 위치로 내려왔다는 것), 그러나 최근까지도 이어지는 민간 신앙과 미신, 전통 축제들의 형태 등에서 이러한 고대 신앙의 흔적을 발견할 수 있다는 것 정도로만 이해할 수 있었다.

이 책을 읽고 나니, 새삼 닐 게이먼이 <<북유럽 신화>>에서 한 작업, 그러니까 신화의 내용을 정리해서 소설처럼 체계적이고 이해하기 쉬운 형식으로 다시 쓴 작업이 얼마나 어렵고 공을 들여야 하는 작업인지 깨닫게 되었다. <<켈트 신화와 전설>>을 읽으면서 이걸 어느 정도 사건의 시간 순서대로 정리한 뒤에 읽기 편한 이야기 형식으로 쓰는 작업을 한다면 어떨까 상상해 봤는데, 켈트 신화가 북유럽 신화에 비해서 자료가 더 파편화되어 있고 변형되어 있는 경우가 많아서 북유럽신화보다 상대적으로 더 힘든 작업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과 가늠할 수도 없는 방대한 작업량에 필연적으로 따라올 거라 예상되는 어마어마한 스트레스에.. 여하간 엄두가 안 나는 작업인 것만은 분명하다.(상상만 해본 거다.. 안 할 거다.. 안 한다 했다. 제목은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켈트신화 에피소드 100 정도? 아니다.. 목차를 라틴어 병기로.. 아니다..)

덧붙여 이미지화, 캐릭터화, 미디어화, 그리고 이를 바탕으로 한 대중화가 얼마나 중요한 지 새삼 느꼈다. 그리스 로마 신화나 북유럽 신화를 볼 때와 비교했을 때 켈트 신화가 상당히 이해도?가 낮았는데, 그 이유가 (물론 노출도의 차이도 있겠지만) 캐릭터화/이미지화가 자연스럽게 이루어져 있지 않아서 읽는 내용을 구체적으로 상상하는 데 상대적으로 난이도가 더 높았기 때문이었던 것 같다. 전체적으로 구체적인 어떤 인물/캐릭터의 연속성 안에서 그 인물의 이야기를 읽어나가는 느낌이 아니라서 흥미를 길게 붙잡기 어려웠다.

읽느라 꽤나 고전했다는 이야기를 앞에서 너무 길게 쓴 것 같아서, 여기부터는 그래도 읽으면서 흥미로웠거나 인상 깊었던 내용들에 대해 이야기해 보려고 한다. 일단 판타지 소설을 좋아하는 독자의 입장에서, 흔히 중세 판타지라고 불리는 장르의 세계관을 접해본 사람이라면 기본 상식처럼 접해본 적 있을 존재들의 뿌리를 살펴보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켈트 신화가 확실히 유럽적 상상력의 바탕을 이루는 요소 중 하나이긴 한 것 같다. 요정, 드루이드, 마법 등 판타지 소설이나 동화에서 본 적 있는 이야기들이 등장해서, 여태껏 접해온 이야기들이 어디서 온 이야기인지 새삼 느끼게 되었다. 중세 판타지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 아서 왕 이야기도 켈트 신화의 변용이라고 할 수 있고, 백조 왕자에 나오는 왕자들을 백조로 변하게 하는 저주나 잠자는 숲 속의 공주에 나오는 요정의 저주와 축복 등이 떠오르는 신화들도 있었다.

또 저승, 지하세계와 관련된 이야기들. 켈트 신화에서는, 처음에는 브리튼 제도를 비롯한 아일랜드 등지를 신들이 풍요롭게 다스리며 살고 있었으나 점차 인간들, 즉 게일족이 찾아와 쇠락해 가는 신들의 시대를 끝내고 새로운 승리자이자 지배자가 된다고 설명한다. 그런데 그 인간들의 근원이 저승이라고 설명된다. “신들을 정복하는 인간(우리에겐 매우 낯설어 보이는)의 이야기는 (...) 한때 모든 켈트족 사이에 널리 알려졌던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그것이 신들에게 그다지 크게 불명예스러운 것은 아니었다. 왜냐하면 인간도 그들처럼 신의 후예였기 때문이다. 켈트 전설에 따르면, 인간은 죽음의 신의 후손이며 죽음의 나라로부터 현재의 세계를 차지하기 위해 왔다는 것이다.”(117) 또한 켈트 신화를 믿었던 이들에게는 “부와 지혜가 본래 지하세계로부터 온다는 믿음이 팽배했던 것으로 보인다.”(242) 켈트 신화에 나오는 귀디온이라는 드루이드 사제는 “인간에게 이롭고 선한 모든 것의 선생이 되었으며 인류의 친구이고 조력자인 동시에 이로운 산물들을 빼앗기지 않으려고 하는 지하세계의 세력에 영원히 맞서는 자”(242)라고 소개되고 있다.

이렇게 지하 세계와 관련된 내용에서, 이전에 <<신화의 언어>>에서 봤던 뼈와 사리의 상상력 부분을 떠올리게 했다.[각주:1] 다만 뼈가 중간적, 경계적 존재로서 저승의 부유함을 이승의 존재에게 선물처럼 쥐어준다고 여겨지는 것과는 다르게, 켈트 신화에서는 이 부유함을 두고 저승과 맞선다고 상상한다. 그리고 이 지상과 지하의 대립이 빛과 어둠의 대립과 같은 것으로 이해된다는 점도 차이점이자 특기할 만한 점이다.

비슷한 맥락으로 봄과 관련된 신화도 짚어볼 수 있다. 켈트 신화의 이야기 중에는 죽음과 지하세계의 신 귄과 태양의 신 귀르수르가 크로이딜라드라는 여성을 두고 다투는 이야기가 있다. 두 신이 계속 전쟁을 벌이고 크로이딜라드를 서로에게서 납치하는 일이 반복되자, 아서가 판결을 내려 크로이딜라드는 아버지에게 돌려보내고 종말 전까지 매해 다섯째 달의 첫날에 싸워서 이기는 자가 크로이딜라드를 차지하라고 결정했다고 한다. 책에서는 이로부터 “어둠과 밝음, 겨울과 여름의 갈등”을 읽어내고 번갈아 차지하게 되는 크로이딜라드를 봄의 상징으로 보고 있다. 책에서도 지적하고 있는 대로 그리스 신화의 페르세포네와 하데스 이야기와 상당한 유사성이 드러나는데, ‘봄을 지하세계에 빼앗긴다’는 식의 인식이 공통되어 있는 것 같아서 흥미로웠다. 지하로부터 얻었고 빼앗기지 않도록 지켜야 하는 부유함에 봄도 포함되는 것이다.

이를 켈트 신화의 선악 구조와 연관 지어 생각해 볼 수 있다. 켈트 신화의 이분법적 사고방식은 여름과 겨울, 빛과 어둠, 저승과 이승을 대립하는 관계로 두고 두 세력 간의 끊임없는 갈등을 상상한다. 신들도 일종의 두 종족이 있는데, 빛의 신들의 종족(투아하 데 다난이라고 부른다)과 어둠의 신들의 종족이 나뉘어 있어서 이들이 끊임없이 세력다툼을 하고, 때로는 싸우고 때로는 교류하는 것이 켈트 신화의 주요한 한 부분을 차지하는 내용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부분은 또 인도 신화에서 데바라고 불리는 천신들과 아수라라는 악신들의 종족이 나누어져 있고 두 세력이 끊임없이 대립하는 것을 떠올리게 하기도 한다.

메이데이 날(5월 1일)과 할로윈(10월 31일)은 지금까지도 기념일로 남아 있는 켈트 민족의 명절인데, 이것도 이러한 사고방식의 반영이다. 이 날들은 켈트 민족이 정착한 영국 연합의 네 지역에서 각자 다른 이름으로 불렸지만 같은 의미로 중요시되었는데, 메이데이는 봄과 여름의 도래를, 할로윈의 겨울의 시작을 기리고 준비하는 의미를 지닌다. 메이데이는 “겨울잠으로부터 대지가 깨어나고 온기와 생명과 식물이 재생하는 것을 기념”(364)하는 날이고, 할로윈은 이에 반대되는 날로서 “(...) 슬픈 것이었다. 여름이 끝나고 햇빛도 없는 짧은 낮과 길고도 끔찍한 밤들이 올 차례였다. 고대에는 켈트 해의 시작이기도 했으며, 괴기한 의식을 통해 어두운 힘으로부터 미래의 조짐을 이끌어낼 수 있었다. 이날은 죽은 자들의 명절이었으며 모든 악한 초자연적 존재들의 명절”(364)로 여겨졌다.

이러한 이분법적인 사고방식 아래, 켈트 신화 내의 선악의 세력 구분은 명확하다. 하지만 한편으로, 의외로 켈트 신화가 선악 구분이 그렇게 분명하지는 않다는 인상을 줄 때도 있다. 빛과 어둠이 대립하지만, 세상의 흐름 혹은 운명의 흐름에 따라 빛의 세력이 융성하던 시기가 저물면 어둠의 세력이 그 뒤를 이어 융성하고, 이를 관조하는 것에 가까운 입장을 신화가 취하고 있는 것으로 보였기 때문이다. (어쩌면 신화의 내용을 요약한 저자의 입장이 반영된 것일지도..)

<<켈트 신화와 전설>>은 이 외에도 흥미로운 내용이 많은 책이었다. 셰익스피어의 4대 비극 중 하나인 <<리어 왕>>의 소재가 된 크로이딜라드, 그녀의 아버지이자 신이었으나 역사의 흐름에 의해 신화 속에서 신성을 잃고 왕, 즉 인간인 인물이 되어감에 따라 크로이딜라드라는 딸도 없어져버린 신 루드, 루드가 아닌 제프리의 딸 코르델리아가 된 크로이딜라드가 최종적으로는 셰익스피어의 코딜리어가 되었다는 해설 같은 경우 아주 재미있게 읽었다. “이 위대한 극작가는 <<리어 왕>>의 비극적 이야기 속에 짜 넣은 전설의 기초를 궁극적으로 켈트 신화에서 빌려왔던 것이다.”(343)

이 이야기는 셰익스피어의 작품과는 다르게 결말이 해피엔딩에 가까워서, 이 이야기를 비극으로 바꿈으로써 셰익스피어가 강조하고 싶었던 주제의식은 뭐였을까 궁금해지기도 했다. 이건 다음 기회에 더 생각해보려고 한다. 어쨌든, 아직 내용을 많이 파악하거나 이해한 건 아니지만, 많은 유럽 문화에 뿌리가 되고 영향을 미쳐온 켈트 신화인 만큼 앞으로 다른 텍스트들을 해석하는 데 있어 이번 독서가 어떤 방식으로든 도움이 되지 않을까 개인적으로는 기대하고 있다.

 

 

 

  1. 조현설, <<신화의 언어>>, 한겨레출판, 2020. ‘뼈와 구슬에 스민 무의식’ 챕터에서 읽은 내용이다. [본문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