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화차
저자: 미야베 미유키
옮긴이: 이영미
발행처: (주)문학동네
발행일: 2012년 2월 20일
<<화차>>는 ‘유명하다’는 말을 빼고는 설명하기가 어려울 정도로 유명한 소설이다. 미야베 미유키는 일본 미스터리 소설가 중에서 정통 미스터리와 달리 사회적 문제를 주제의식으로 다루는 사회파 미스터리 소설의 대표적인 작가라고 할 수 있는 작가이며, <<화차>>는 그중에서도 저자의 대표작이라 할 수 있을 만큼 일본에서도 한국에서도 유명하다. 원작은 1992년에 일본에서 출간되었고, 한국에서는 2012년에 번역되어 출간되었으며, 같은 해에 소설을 원작으로 한 동명의 영화가 개봉했다.
<<화차>>의 줄거리는 이렇다. 혼마 슌스케는 범인 검거 중 다리에 부상을 입어 휴직 중인 경찰이다. 어느 날 죽은 아내의 친척 청년 가즈마가 찾아와, 자신의 약혼녀 세키네 쇼코가 갑자기 사라졌다며 약혼녀를 찾아달라고 한다. 결혼 준비 중 쇼코의 신용카드를 만드는 과정에서 쇼코에게 개인 파산 이력이 있다는 게 드러나는데, 쇼코가 마치 그 사실을 몰랐던 것처럼 굴더니 아무 말도 없이 자취를 감추었다는 것이다. 혼마는 쇼코의 자취를 되짚어가다가, 쇼코의 개인 파산 및 회생을 도왔던 변호사를 만나 자신이 찾고 있는 사람이 진짜 쇼코가 아니라는 걸 알게 된다. 쇼코의 신분을 빼앗아 쇼코 행세를 했던 정체 모를 여성과 진짜 쇼코가 모두 사라져 있는 상태, 두 사람을 추적하는 혼마는 그들의 과거에 대해 알아갈수록 이들의 상처가 비슷하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사회파 미스터리 작가로 유명한 미야베 미유키 작가의 작품인 만큼 사회적 문제에 대한 인식이 분명하게 드러난다. 여기서는 무분별한 금융 대출 상품의 판매와 그로 인한 피해로부터 보호받기도 어렵고 대책 마련에도 무관심한 사회적 시스템에 대한 문제의식, 거기서 더 나아가 상업주의와 과시적 소비중심사회 분위기와 그에 휩쓸려 타인뿐만 아니라 자기 자신으로부터도 소외되는 개인들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다. 추적의 대상이 되는 두 인물의 삶이 어떻게 고통스러워지게 되었는지를 따라가다 보면 자연스럽게 느끼게 되는 부분도 있고, 쇼코를 도왔던 변호사나 친했던 사람의 입을 빌려 직접적으로 이야기하는 부분도 있다.
“지금 상황은 완전히 ‘정보파산’이란 생각이 들어요. (...) 이렇게 저렇게 하면 돈을 왕창 벌 수 있다. 주식을 해라, 아니, 집을 사라, (...) 그리고 한창 놀고 싶을 나이의 젊은이들은 요새는 어느 나라가 재미있다느니, 어디로 여행을 가는 게 현대적이라느니, (...) 입는 옷은 이게, 차는 저게 좋다……. 이런 것들이 다 정보잖아요? 다들 들떠서 정보를 좇기에 여념이 없어요. 그런 상황에서 아직 제도와 법률이 제대로 정비되지 않은 소비자신용이 자기 회사의 이익만 노리고 돈을 빌려주죠.(...)” / (...) 사람들은 왜 그런 정보를 좇는 걸까. 거기에 뭔가가 있다고 믿고 따라가는 것이리라. 거기에서 뭔가를 보고 있으리라. (220-221)
수사를 위해 여러 사람들을 만나던 혼마는, 과도한 소비를 부추기는 정보가 과도하게 많다는 의견을 듣고 그런 정보를 좇는 사람들의 이유를 고민한다. 그리고 그 답 역시 두 사람을 추적하는 과정에서 만난 사람으로부터 얻게 된다. 쇼코의 지인인 후미에라는 인물은 본인 역시 자본주의 사회에서 실패를 경험한 사람이자 쇼코의 생각을 정확히 파악한 인물이다.
“그 애한테 이런 얘기를 한 적이 있어요. 넌 설령 자전거조업으로 돈을 빌리더라도 맘껏 쇼핑하고, 사치하고, 비싼 물건에 둘러싸이면 네가 꿈꾸던 고급스러운 인생을 실현한 것 같은 기분이 들어서 행복했던 거지? 라고. (...) 그렇대요. 내 말이 맞대요.” (345)
“(...) 뱀이 탈피하는 이유가 뭔지 알아요? (...) 목숨 걸고 몇 번이고 죽어라 허물을 벗다 보면 언젠가 다리가 나올 거라 믿기 때문이래요. 이번에는 꼭 나오겠지. 이번에는, 하면서.” / 다리 따위 없어도 상관없잖아요. 뱀은 뱀이니까. (...) / “그런데도 뱀은 생각해요. 다리가 있는 게 좋다, 다리가 있는 게 행복하다고. (...) 그런 뱀들에게 다리가 있는 것처럼 비춰주는 거울을 파는 뱀도 있다는 말씀. 그리고 뱀들은 빚을 내서라도 그 거울을 사고 싶어 하는 거예요.” (346-347)
후미에가 들려주는 쇼코의 이야기와 다리가 생기길 바라는 뱀의 비유는 저자가 전하고 싶은 현시대에 대한 문제의식의 핵심을 담고 있다. ‘좋은 것, 좋은 삶’에 대한 정보와 이미지가 넘쳐나고 과장되는 현시대에, 자신의 행복이 무엇인지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수많은 사람들이 남들이 말하는 행복을 행복이라 믿으면서 성취할 수 없는 것을 성취하는 데 매달리느라 자기 자신을 소외시키는 현상, 그리고 이를 이용해 이득을 얻는 이들에 대한 비판적 시선을 던지는 것이다. (갑작스럽지만 덧붙여 본다면, 이런 부분에서 한병철의 <<피로사회>>를 떠올리게 되었다. 한병철은 <<피로사회>> 21세기를 과잉 긍정성을 바탕으로 한 성과사회이자, 현대인들이 성과를 위해 스스로를 착취하는 주인이자 노예, 가해자이자 피해자로서 성과주체가 되어 경험하는 극도의 소진과 피로가 만연한 피로사회, 그리고 무엇이든 할 수 있다고 여겨지는 과잉 긍정의 세상에서 나는 ‘할 수 있지 않다’고 생각하게 되는 데에서 시작되는 우울사회라고 진단하고 있다. 물론 <<화차>>는 1992년 작품이고 <<피로사회>>는 2010년 출간된 책이라 각각의 저자들이 포착하려 한 현대 사회의 일면이나 방향성이 완전히 같을 수는 없겠지만, 어느 정도 비슷한 문제의식을 보이고 있는 것 같지 않은가?)
또 이러한 저자의 문제의식이 작품 내에서 순차적으로 드러나는 과정이 두 인물을 추적하는 과정과 맞물려 돌아가고 있기 때문에 소설 구성에 있어서 상당히 치밀했다는 인상을 주었다. 구조적인 치밀함이라는 측면에서는 서브플롯의 활용도 눈에 띄었다. 혼마의 아들이 친구와 함께 기르던 강아지 멍청이를 잃어버려 찾는 이야기, 혼마의 동료 경찰인 이카리가 수사하는 사업가 남편 살해 사건 이야기 등이 혼마의 수사 과정 중간중간 삽입되면서 메인 플롯의 복선과 암시를 제공한다.
덧붙여, 한 사람의 존재성을 완전히 이해한다는 것의 (불)가능성을 누군가의 자취를 추적하는 서사를 통해 전달한다는 점에서 한강 작가의 <<바람이 분다, 가라>>가 떠올랐다. 디테일하게 들어가면 다른 점이 많지만, 혼마가 작중 내내 추적하던 사람을 실제로 보게 되는 마지막 장면에서 교코의 삶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주고 싶어 하는 장면에서 그런 생각을 하게 됐다. 한 사람을 온전히 이해하는 것은 불가능하지만, 아무도 들어주지도 관심 갖지도 않던 그 사람의 이야기를 들어보려는 시도는 (불)가능한 소통의 시도로서 의미를 가진다. 이런 소통의 시작(혹은 시작될 가능성)이 소설의 마지막 장면에 자리하는 것이, 고도로 도시화되고 자본주의화 된 사회에서 소외된 존재가 되어가는 인간을 포착하고 그려내는 소설 내의 지속적인 시도와 잘 맞물린다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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