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무엇이든 쓰게 된다 (소설가 김중혁의 창작의 비밀)
저자: 김중혁
발행처: 위즈덤하우스
발행일: 2017년 12월 18일
꾸준히 작품을 찾아 읽는 몇 명의 작가들이 있는데, 그중 한 명이 김중혁 작가다. 조심스럽게 김중혁 작가의 소설들을 좋아하는 편이라고 말해보고 싶다. (아니다. 조심스럽기는 무슨, 나는 분명히 김중혁 작가의 소설을 좋아한다.) 단편 소설 <유리 방패>로 처음 작품을 접했고, 특유의 엉뚱함과 유쾌함이 재미있어서 다른 소설들도 찾아봤었다. 이후로도 가끔씩 새로 나온 소설이 있는지 알아보고 찾아서 읽고는 했다. 귀 기울여 들어야 겨우 들을 수 있는 소리들, 언어로는 미처 포착되기 어려운 소리들을 포착하고자 하는 글을 쓰는 작가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런 소리를 내는 사소하고 일상적인 작은 존재들, 평범한 사람들에 대한 관심이 작품에 항상 묻어난다. 그래서 유머러스하지만 냉소적이지 않고, 미처 찬란하게 빛나지 못하기도 하고 가끔은 어둡기까지 하더라도 따뜻함이 완전히 사라지는 일이 없다는, 일종의 신뢰(?)가 생겼다. (개인적으로 인상에 깊게 남아서 제목을 기억하고 있는 소설은 <유리방패>, <무용지물 박물관>, <비닐광시대>, <좀비들>, <미스터 모노레일>이 있고, 최근에는 판타지 장르 요소가 들어간 장편 소설들이 나왔길래 재미있게 읽었다.)
<무엇이든 쓰게 된다>는 김중혁 작가의 글쓰기에 대한 생각을 담고 있다. 실용적인 작법서라기보다는 김중혁 작가의 글쓰기가 어떤 모습인지 엿볼 수 있는 책이라고 봐야 한다. 글을 쓴다는 것에 대한 가치관, 글을 쓰면서 사는 삶의 생활 패턴, 심지어 어떤 도구들을 사용하는지 까지도 읽어볼 수 있다. 직접 그린 그림과 만화도 함께 볼 수 있다. 2017년도에 나온 책이니만큼 이 책을 쓸 당시의 김중혁 작가와 지금의 김중혁 작가는 또 다를 수 있겠지만, 그래도 왠지 읽으면 읽을수록 작가에게 좀 더 친밀감을 느끼게 되고, 여태껏 읽었던 김중혁 작가의 소설들을 다시 떠올리게 되는 책이었다.
이 책에서 내게 가장 인상 깊었던 부분은, 글쓰기의 (불)가능성에 대한 이야기들이었다. 언어로는 결코 모든 것을 담아낼 수 없고, 언어로 담아낸 것은 필연적으로 어딘가 잘라내고 덜어낸 것이다. 기존 언어 질서가 배제하기에 언어화되지 못하는 소외된 소리들이 반드시 있고, 그렇기에 글쓰기는 태생적으로 불완전하며 불가능하다. 그러나 언어로 표현될 수 없는 것들을 표현하기 위해 계속 시도하는 글쓰기, '그럼에도 불구하고' 글을 쓰는 끊임없는 시도에서 글쓰기는 가능성을 획득한다. 그래서 (불)가능한 글쓰기인 것이다.
"나는 글을 쓴다는 것이 가언을 만드는 일과 표어를 찢어버리는 일 사이에서 일어나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우리는 글을 통해 끊임없이 어떤 명제를 만들거나 정의를 내리고 싶어 한다. 자신을 표현하기 위해 글을 쓰지만, 그 글로 자신이 온전하게 표현되지 않는다는 것을 안다. 우리는 단언하듯 문장을 만들지만 그 문장이 얼마나 불안정하며 바보 같은 것인지도 알고 있다. 바보 같은 줄 알면서 계속 쓰고, 단언하지 않으려 하면서도 '하얀 눈 위의 구두 발자국' 같은 문장을 끊임없이 찍어낼 수밖에 없다. 우리는 그 속에서 흔들리며 글을 쓴다."(124)
"글은 결코 완성될 수 없다. (...) 모든 이야기를 마치고 나면 '이번에도 실패했다'는 생각이 든다. (...) 후회가 든다. 돌이킬 수 없다. 손을 놓아야 한다. (...) 이번에도 실패했다. 실패했지만 그래도 좋았다. 나는 내가 쓰고 싶었던 것을 썼고, 그럼에도 쓸 수 없는 것을 쓰지 못했다. 이번에 쓰지 못했던 것을 다음에 다시 쓰려고 할 것이다. 글쓰기는 쉽게 끝나지 않는다."(59-60)
인용된 부분들은 소설 쓰기의 중심에, 작가의 어떤 고민과 생각이 담겨 있는지 볼 수 있었던 부분이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런 고민을 바탕으로 어떤 소설들이 탄생했는지 알기 때문에 더 와 닿았던 것 같다. 글쓰기의 불완전성을 누구보다 가까이서 느끼면서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글쓰기를 놓지 않는다. 언어로는 담을 수 없는 작고 사소한 소리들이 세상에는 너무나 많다는 걸 알면서도 그것에 대해 계속 다시 써 본다. 예정된 실패에 꾸준히 달려들 수 있는 강인한 영혼은 참 멋지다. 그런 의미에서 세상의 모든 작가들은 멋진 사람들이다. 그래서 내가 작가들을, 특히 소설가들을 동경하게 되는 건지도 모르겠다. 뭐라도 쓰고 있는 지금 이 순간에도, 나는 글을 쓰기에는 스스로가 너무 나약하고 쉽게 포기하는 사람이라고 느낀다. 언젠가는 나도 "그래도 쓰겠다"라고 선언할 만큼 단단한 사람이 될 수 있을까.
김중혁 작가의 소설을 읽을 때 인물들이 주고받는 대화의 호흡이 길게 이어진다는 느낌을 받아서 개인적으로는 대화가 꽤나 찰지다(?)고 생각했었는데, 이 책을 보면서 김중혁 작가는 '대화'를 글쓰기에서 아주 중요한 요소로 여기고 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물론 인물들의 대화를 잘 짜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것보다 먼저 작품 자체가 탄생하기 위해서는 그 기반에 작가 내면의 두 가지 마음이 나누는 대화가 있어야 한다는 내용으로 이해했다.
"글을 쓰기 위해서는 언제나 두 가지 마음을 동시에 품어야 한다. 끊임없이 자신을 분리시키고 싸우게 만들고 대화하게 만들고 중재해야 한다. 글쓰기의 시작은 두 개의 마음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확인하고 인정하는 것에서 비롯된다. 문장이 한 사람의 목소리로 적어가는 것이라면, 문단은 두 개의 마음이 함께 써내려가는 것이다."(86) 그리고 이런 "대화를 상상하는 힘에서 작가의 개성이 형성된다. 대화를 상상한다는 것은 어떤 일에 대해 토론하는 것이고, 두 사람의 입장을 대변하는 것이고, 한쪽으로 기울지 않는다는 뜻이다.(108)
이것 말고도 많은 이야기들이 있다. 김중혁 작가의 글을 좋아한다면 읽어볼만한 책이다. 쓸데없는 얘길 덧붙이자면, 처음 책을 다 읽었을 때는 <무엇이든 쓰게 된다>는 책 제목에 살짝 의문이 들었었다. 글쓰기에 대한 다른 책들은 다 읽고 책장을 덮었을 때 창작에 대한 의욕과 희망이 마구 솟구쳤던 데 비해, 이 책은 그냥 작가와 잔잔한 대화를 나눈 느낌에 가까웠고 '무엇이든' 쓰겠다는 의욕이 생기진 않았다. 그래서 제목과 내용이 살짝 따로 노는 것 같다는 생각을 했었다. 그런데 결과적으로는 지금 이 책에 대해 무슨 말이든 쓰고 있으니, 책 제목이 예언처럼 실현된 것 같기도 하다. 재미있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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