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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가 아키라, <스마트폰을 떨어뜨렸을 뿐인데>, 북플라자, 2017.

by 마들렌23 2023. 5. 18.

제목: 스마트폰을 떨어뜨렸을 뿐인데

저자: 시가 아키라

옮긴이: 김성미

발행처: 북플라자

발행일: 2017년 12월 8일

 

 

시가 아키라&#44; 스마트폰을떨어뜨렸을뿐인데&#44; 북플라자&#44; 2017.
표지

 


<스마트폰을 떨어뜨렸을 뿐인데>는 누군가가 잃어버린 핸드폰을 주운 한 사람이, 남자친구의 핸드폰을 돌려받기 위해 연락한 이나바 아사미의 이름에서부터 시작해 SNS 뒷조사와 미행, 지인 사칭, 해킹 등의 방법으로 그녀에게 점점 마수를 뻗치는 내용이다. 사실 스마트폰을 주운 그 사람은 장발에 흑발인 여성들만 골라 죽이는 연쇄살인범이었고, 주운 핸드폰에서 본 사진에 나와 있는 이나바 아사미의 외모가 범인의 기준에 맞았기 때문에 범죄의 타깃이 된 것이다. 마침 친구의 권유로 페이스북에서 활발히 활동하게 된 아사미의 계정에 범인은 점점 접근하는데, 한편으로 아사미는 왠지 감추고 있는 비밀이 있는 듯 보인다.

이 소설은 넷플릭스에 있는 동명의 한국 영화로 제목을 접했다. 스마트폰이 소재인 추리 스릴러물이라는 게 재미있어 보였다. 영화를 보진 않아서 간략한 줄거리 설명만 잠시 찾아봤는데, 설정이 달라진 부분들이 벌써 보여서 꽤 흥미로웠다. 주인공이 연인의 잃어버린 스마트폰을 찾아주는 게 아니라 본인의 잃어버린 스마트폰을 찾는 것으로 바뀌었고, 범인이 일으킨 연쇄 살인 사건을 수사하는 경찰과 범인이 소설에서는 아무런 접점이 없는 반면 영화에서는 가족 관계라서 경찰이 자신의 가족을 범인으로 의심하는 상황으로 설정이 바뀌었다. 이런 설정 변경은 일본과 한국의 문화적 차이로 인해 각각 '잘 먹히는' 스릴러 서사의 형태가 달라서일까? 아니면 소설과 영화의 매체 차이로 인해서 각색되어야 했던 걸까? 어쨌든 이렇게 바뀐 설정이 후반부에서 어떤 식으로 원작 소설과는 다른, 이야기의 변화를 만들어 낼지도 궁금해진다.

<스마트폰을 떨어뜨렸을 뿐인데>의 강점은 스마트폰의 보안 취약, 개인 정보 유출과 해킹, 피싱 등, 사물과 인간의 상호작용을 포함한 일상속 많은 부분의 연결 형태가 모바일 디바이스로 컨버젼스 되어가는 시대인 현대 사회에서 누구에게나 일어날 수 있는 일이 소재인 만큼 더 핍진하고 피부에 와닿는 서스펜스를 느끼게 된다는 데 있다. 한 개인의 비밀번호와 개인 정보를 어떻게 추적하고 알아내는지, 그게 생각보다 어렵지 않다는 걸 보여주는 점이 실감 나는 스릴을 만들어 낸다. 범인이 주인공의 SNS를 통해 지인을 사칭하고, 정보를 캐내고, 결국 주인공의 비밀번호까지 알아내서 계정을 빼앗아 테러하기까지의 과정이 너무 그럴듯해서 경각심이 든다.

소설은 경찰, 아사미, 범인의 세 시점을 번갈아 보여주면서 진행된다. 범인 시점에서 진행되는 이야기는 어떻게 범죄가 이루어지는지 따라가는 하우더닛 유형의 서사를 보여준다. 한편으로 범인의 시점은 보여주지만 이름이나 정체는 알려주지 않기 때문에, 주인공이라 할 수 있는 아사미의 시점에서 범인이 어떤 모습으로 아사미에게 접근하는지 맞추는 정통 미스터리 서사의 특징도 가지고 있다는 것이 특이점이다. (하지만 누가 범인인지는 티가 꽤 나서 추리 소설 좀 읽었다 하는 독자들은 맞추기 어렵지 않을 것이다.) 즉 추리소설의 여러 유형의 재미가 섞여 있는 소설이라고 할 수도 있을 것이다.

반면 범인의 과거 설정(우울증에 걸린 어머니에게 학대당한 과거, 어머니와 닮은 검고 긴 머리칼의 미녀들을 범행 대상으로 삼음, 유사-어머니로 삼은 성매매 여성에게 거부당한 뒤로 연쇄살인범으로 각성 등)이나 피해자이자 주인공인 여성 인물의 설정(스포일러지만 정체에 대한 반전) 등은 일본 추리소설에서는 전형적이라고까지 할 수 있는 설정들이었다. 독창적이고 입체적인 캐릭터를 중시하는 독자는 아쉽게 느낄 수 있는 부분으로 보인다. 하지만 이런 전형성 때문에 오히려 빠르고 가볍게 읽어나갈 수 있는 면도 있는 것 같다.

덧붙여서 경찰 수사 부분이 조금 루즈한 느낌이 있다. 경찰 시점이 작품의 세 시점 중 하나여서 계속 나오데, 할당된 분량에 비해 수사의 진척도 느리고, 사건 해결에 전체적으로 그리 큰 영향을 주지 못하고, 범인의 함정에 휘둘리는 모습도 나온다. 그러다보니 경찰 수사 부분이 현실성이 없다거나 하는 비판을 받을 만한 지점이 있고 추천사에 보면 실제로 그런 평들이 있었다고 한다. 작품 내의 경찰들이 온라인 수사나 해킹과 관련해서 무지하고, 수사 방식 자체도 대체적으로 아날로그적인 면을 보여주고 있어서 해커인 범인과의 대비를 위해 전략적으로 선택한 부분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은 든다.

정리하자면, 이 소설은 추리 소설을 가볍게 즐기고 싶은 독자들이라면 시도해 볼 만한 책이다. 내용이 지나치게 무겁거나 고어하지 않고 분량도 길지 않아서 킬링타임용으로 나쁘지 않다. 다만 주인공이 후반부에 범인에게 협박당할 때 디지털 성범죄가 발생하므로 유의할 것. 또 전체적으로 남녀 관계, 연애, 결혼에 대한 이야기가 꽤 많이 나오는데, 일본의 연애/결혼에 대한 감수성이 한국과는 좀 다른 것 같아서 이런 부분도 감안해야 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