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나는 왜 생각이 많을까? (머릿속의 스위치를 끄고 싶을 때 보는 뇌과학 이야기)
저자: 홋타 슈고
옮긴이: 윤지나
발행처: 서사원
발행일: 2021년 7월 19일
<나는 왜 생각이 많을까?>는 얇고 가벼워서 부담 없이 읽기 시작한 책이다. 책을 펼쳤을 때 보이는 보라색 하이라이트도 마음에 들었지만, 사실 책 제목이 너무 내 얘기 같아서 홀린 듯 읽기 시작했다. 나는 생각이 너무 많다. 물론 생각이 많은 게 꼭 나쁜 건 아닐 것이다. 좋게 보면 이건 신중하다고 할 수도 있다. 또 가끔은 그러다 새로운 걸 떠올릴 수도 있다. 하지만 현실적이고 건강한 삶과 생각에 빠지는 것 사이에서 균형을 잡아가며 살아가는 것은 참 어렵다.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진 생각이 우유부단함이 되거나, 부정적인 쪽으로 흘러 자주 불안해진다면 더욱 그렇다.
사례를 하나 들어볼까? 나는 지금 이어폰 대신 연분홍색 블루투스 헤드셋을 쓰고 있다. 처음으로 헤드셋을 사 본 것이라, 구매를 결심하기 전까지 여러 종류의 헤드셋을 후보군에 넣어두고 한참을 고민했다. 가격대, 성능, 외형, 리뷰까지 구매 결정을 위해 고려해야 할 게 너무 많았다. 어느 날 엄마에게 모아둔 헤드셋 사진들을 보여주며 여태껏 공부(?)한 제품 특징들을 설명한 뒤 뭘 사야 될지 모르겠어서 두 달째 고민 중이라고 얘기했더니, 아주 답답하다는 표정이 돌아왔다. 그리고 “그 정도 봤으면 일단 그냥 하나 사봐!”라고 한 마디 들었다. (사실 나는 헤드셋을 구매해 보겠다고 결심하는 데에만 한 달이 넘게 걸렸기 때문에 실질적으로는 이 건으로 세 달 넘게 고민을 한 거였는데, 이런 얘기까지 하면 엄마가 뭐라고 하실지 몰라서 그냥 입을 다물었다.)
엄마의 조언과 비슷한 말이 이 책에도 있었다. “결단을 내려야 하는 문제는 어떻게 결정할지가 아니라 ‘결정할 수 있는지’가 중요하다. 어떤 것이든 하겠다고 결정하든 하지 않겠다고 결정하든 일단 결정할 마음을 먹는 것이 결국 인생의 만족도를 크게 좌우한다.”(50) 참고로, 헤드셋은 엄마의 조언대로 후보군 중에 일단 골라서 구매했고 아주 만족스럽게 잘 쓰고 있다.
<나는 왜 생각이 많을까?>는 나처럼 생각이 넘쳐서 스스로 제어가 잘 안 되는 사람들을 위한 조언을 건넨다. 다양한 뇌과학과 심리학 연구를 간결한 설명으로 제시하면서 이를 바탕으로 내가 왜 생각이 많은지, 그럴 때 필요한 마음가짐과 실용적인 방법이 뭔지 알려준다. 사실 “걱정하는 일의 90%는 일어나지 않는다”거나, “지금 이 순간에 집중”해야 불안하지 않다는 말, 정보가 지나치게 많으면 오히려 결정을 잘 못할 수 있다는 이야기는 이 책에서 읽기 전에도 이미 많이 들어본 이야기들이다. 하지만 알고 있다고 마음이 갑작스럽게 변하거나 넘치는 생각들이 정리되는 건 아니다. 나도 헤드셋을 구매할 때 그렇게 오래 고민하는 게 소용없다는 걸 머리로는 알고 있었고, 글쓰기에 ‘집중해야 한다’고 생각하기 시작한 순간 이미 반쯤은 망한 거라는 걸 경험적으로 알고 있다. 중요한 건 ‘어떻게’다.
이 책은 나 같은 사람들을 위해 실질적인 지침도 함께 알려준다. 예를 들면, “두루뭉술하게 기억하기”는 빠른 결정을 내리는 데 좋다거나, 충동에 사로잡혔을 때 이마를 손가락으로 30초 동안 두드리면 진정할 수 있다는 조언들이다. 나는 특히 결정을 내리기 어려울 때 자신의 취향인 사람 혹은 닮고 싶은 사람이 어떻게 결정할지 생각하고 따라 해 보라는 내용이 인상적이었다. 한 번도 생각해 본 적 없는 방식인데, 결정해야 할 일에 파묻혀버린 내 시선에서 벗어나, 거리감을 두고 제삼자의 시선에서 바라볼 수 있는 효율적인 방법인 것 같아서 기억해두려고 한다. 또 최근 내가 잘 활용하고 있는 건 감정이 흐트러졌을 때 속으로 숫자 세기이다. 짧은 산책과 함께하면 더 효과적이다! 더하여 양치질, 걷기, 수면, 귀여운 고양이나 강아지 사진 보기 같은 스트레스를 풀고 기분을 전환하는 보편적인 방법들 외에도 불안을 글로 써 보기, 노래 부르기, 자신이 원하는 모습의 외모를 어느 정도 갖추면 의욕과 능률이 오른다는 이야기도 기억해 둘 만 하다.
‘어떤’ 생각이 많은가? 이것도 중요한 문제다. 나는 이 책에서 부정적인 생각에 대해 집중해 읽기도 했다. 넘치는 생각들이 모두 긍정적인 생각이라면 좋겠지만, 현실적으로 생각을 지나칠 정도로 많이 하면 부정적인 흐름으로 가기 쉽다. 그럴 때 가장 쉽게 떠올리는 대처방법은 ‘안돼, 긍정적으로 생각해야지.’ 하고 속으로 되뇌는 것인데, 저자는 그런 방법이 오히려 역효과를 부를 수 있다고 말한다. “한 번 끓어오른 부정적인 감정을 억지로 긍정적으로 받아들이려 한다면 뇌가 혼란스러워져서 과열되는 것이다. (중략) 가능하면 자신을 3인칭 시점으로 보고 ‘아, 그는 지금 부정적이구나’라고 있는 그대로 묘사하면서 슬쩍 사고를 다른 곳으로 돌려보자.”(130-132) 고 저자는 조언한다.
그렇다면 부정적인 생각은 어디서 오는가? 저자는 ‘현실과 이상 사이의 괴리감’에서 비롯된 (심리적) 갈등을 원인으로 든다. 본능적으로 비교하는 성향, 부정적인 것에 더 집중하는 부정성 편향 등은 인류가 진화적으로 획득한 것이다. 이런 성향은 우리가 마음속에 가지고 있는 이상과 현실의 간극에 주의를 쏟게 만든다. “마음속에 품고 있는 불안이 클수록 바람도 함께 커지는데 이 때문에 이상과 현실 사이에서 큰 괴리감을 느낀다는 것이다. 괴리감이 커질수록 부정적인 감정이나 생각에 더욱더 지배되기 쉽다.”(169)고 저자는 설명한다. 부정적인 생각이 많아질 때는 “일단 사실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확대 해석을 경계해야 한다. 또 “~해야만 한다”라고 지나치게 생각하는 자신, 곧 이상적인 기준에 지나치게 몰두하는 자신을 인식하고 불안이 일어나는 사고방식의 원리를 이해한다면 우리 뇌는 객관적인 시선을 유지할 수 있다고 한다.
전체적으로 봤을 때 생각이 많은 나를 다스리는 방법들이 가지고 있는 핵심적 요소는 ‘거리를 두고 바라보는 것’으로 보인다. 어떤 대상에 대한 생각에 함몰되지 않고 제삼자의 시선을 취하는 것, 생각에 휘말려 들 것 같을 때 의식적으로 진정할 수 있는 시간 텀을 가질 것, 나의 감정에 몰입하지 않고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도록 스스로를 만들어 나갈 것. 써 놓고 보니 거의 득도의 경지에 도달해야 할 것처럼 보이긴 한다. 그래도 잊지 않고 머릿속 생각과 현실의 삶이 균형 잡힌 매일이 되도록 힘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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