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봉제인형 살인사건
저자: 다니엘 콜
옮긴이: 유혜인
발행처: 북플라자
발행일: 2017년 10월 20일
몇 년 전, 매우 흥미롭게 초반부 내용을 요약해서 이미지와 함께 보여주는 SNS 광고가 인상 깊었던 소설이 있었다. 실제로 광고가 효과가 있었는지, 당시에 도서관에 가보면 이 책은 항상 대출 중이었다. 게다가 한 친구는 바로 그 광고를 보고 뒷내용이 궁금해져서 읽어봤더니 재미있었다고 추천까지 해 줬다. 그러니까 이 책이 내 머릿속 한편에 남아있던 것도, 이번에 이 책을 우연히 발견하고 집어 들게 된 것도 어쩌면 그 광고의 엄청난 영향력을 반증하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봉제인형 살인사건>은 속도감이 빠른 소설이다. 내게 책을 추천해준 친구도 금방 읽을 수 있다고 했었는데, 이번에 읽어보니 정말 실감이 났다. 소설 내용상 이미 살해된 피해자들도 있고 앞으로 살해될 것이라 예고된 피해자들도 있는 데다 사건을 조사하는 여러 인물들의 감정적인 갈등들까지 있다 보니, 여러 가지 에피소드들이 빠르게 일어나기 때문에 소설의 흐름을 따라가다 보면 정신없이 몰입하게 된다.
스포일러가 되지 않는 선에서 소설 내용을 간단하게 소개해 보자면 이렇다. 여섯 개의 신체 부위를 이어 붙여 한 사람처럼 만든 시체가 한 아파트에 매달린 채 발견되는 사건이 발생한다. 자신이 체포한 아동 살해범이 재판에서 무죄를 선고받자 범인을 그 자리에서 폭행해 정직 처분을 당하고 정신 병원에 강제 입원했다가 복직한 지 얼마 되지 않은 경찰 울프가 이 봉제인형 살인사건을 조사하게 된다. 그런데 이 시신의 손가락은 울프의 방을 가리키고 있었고, 시신의 머리는 그가 폭행했던 아동 살해범의 머리였다. 거기다 기자인 자신의 전 부인에게 범인이 앞으로 일어날 여섯 번의 살인 계획 리스트를 보냈음을 알게 된 울프는 자신이 이 사건에 깊은 관련이 있음을 느끼고 사건에 절박하게 매달린다.
이 소설은 추리소설의 근본이라 할 수 있는 후더닛(whodunnit) 유형의 소설로, 엽기적인 범행을 제시하고 누가 범인인지 추적하는 과정을 따라가는 것을 기본적인 형식으로 가진 소설이다. 그러나 소설의 주인공이라 할 수 있는 울프는 말 그대로 사건의 중심에 있는 인물이고, 작품 전체를 아우르는 사건의 큰 그림을 파헤치는 탐정 역할을 하는 인물은 따로 있다. 탐정이 주인공인 소설은 아니라는 것이다. 후반부로 가면서 점차 사건의 전후관계와 내막이 드러나게 되면 범인의 정체보다는(물론 궁금하지 않다는 건 아니다) 주인공이 어떤 행보를 선택할지가 더 중요해진다. 이건 이 소설이 품고 있는 질문과도 연결된다.
저자 소개에서도 나와 있듯이, 이 작품은 진정한 정의가 무엇인지에 대한 나름의 의문을 안고 있는 소설이다. 그리고 주인공의 설정, 과거, 소설 내에서 보이는 행보까지 모두 이 질문을 위한 것으로 보인다. 울프라는 캐릭터가 상당히 복잡한 캐릭터라서 더욱 그렇다. 울프는 범죄자를 체포하고 처벌한다는 역할에 매우 충실한 인물이지만, 한편으로 그 목적을 이루기 위해서 위법적인 행위도 마다하지 않을 인물이다. 또 폭행 사건 당시 주변의 여러 사람들과 집단들이 각자 자신의 이익을 위해 행동하면서 울프는 일종의 버림받는 경험을 하게 되고, 이것이 (자신이 믿는) 정의를 부정당하는 것과 동일시되면서 심각한 심리적 위기에 놓인 순간이 있었던 것으로 이해되었다. 그리고 이것이 이 소설에서 일어나는 모든 사건들과 매우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다.
울프는 소설 내내 사건에 아주 큰 책임감을 느끼면서 본인이 혼자 해결하려는 강력한 의지를 보이는데, 이런 점이 또 동료 경찰들과의 충돌을 만들어내면서 소설이 꽤 복잡하게 흘러가게 한다. 생각해 보면 울프는 과거 서사나 가치관적인 측면에서 꽤나 복잡한 인물인 건 맞지만, 서사 상 성격이나 가치관의 변화가 전혀 없다는 측면에서 평면적인 인물이기도 하다. 소설 후반부에서 울프가 자신이 '해결'하겠다고 선택하는 방식이 예전 아동살해범을 폭행했을 때와 전혀 다를 게 없는 방식이기 때문이다. 대신 그때와 다르게 이번에는 울프의 정의감을 이해해 주는 사람이 한 명 있다. 그게 울프에게 정확히 어떤 변화를 주었는지 명시적으로 제시되진 않고 열린 결말처럼 끝나긴 하지만.
결말부에서는 주인공이 이후에 어떻게 되었는지, 마지막까지 몰아치면서 벌어진 사건들이 구체적으로 어떻게 마무리가 되었는지는 알려주지 않는다. 범인을 미행할 때 나왔던 '양들 속의 늑대' 비유가 마지막 장면의 주인공에게 반복되는데, 이것은 주인공이 범인과 (도덕적으로) 똑같은 (타락한) 존재가 되었다는 뜻으로 볼 수 있다. 하지만 반대로, 결말부에서 보여주는 이야기의 흐름상 이 부분은 범인과 주인공 사이에 유사점이 분명히 있지만 주인공의 정의에 대한, 믿음을 보여주는 사람의 존재로 인해 주인공은 범인과 달라졌음을 암시하는 것으로 해석할 수도 있다고 보였다.
결국 주인공이 선택한 행동과 가치관에 대한 독자들의 판단에 따라 이후 주인공의 행보를 자유롭게 상상하도록 맡겨 둔 열린 결말인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책을 덮고 난 뒤 돌이켜 봤을 때 적당히 깔끔한 결말이라는 인상을 강하게 남겼다. 소설 내에서 풀어내야 했던 이야기들은 전부 깔끔하게 끝냈고 질문도 던졌으므로, 만약 이후의 이야기를 더 풀어갔다면 사족이라고 느껴졌을 지도 모른다. 속도감 있고 깔끔한 전개의 추리소설을 좋아하는 사람에게 추천할 만한 소설이고, 초반에 등장하는 범행의 형태가 충격적인 것에 비해 지나치게 잔인한 묘사나 장면은 덜한 편이라 고어한 것에 거부감이 있지만 추리 소설은 읽고 싶은 사람들도 읽어볼 만한 소설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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