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호모 데우스(미래의 역사)
저자: 유발 하라리
옮긴이: 김명주
발행처: 김영사
발행일: 2017년 5월 15일
나의 삶, 나의 세상은 짧고 또 좁다. 예전에는 삶의 시간이 쌓여가면서 시야가 조금씩 넓어지고 있다고 생각하면서, 나도 서서히 어른이 되어가려는 걸까 생각한 적도 있다. 아마 지금보다 더 시간이 흐르고 나이를 먹으면서, 세상을 보는 시야는 넓어지든 좁아지든 또 얼마간 변화할 것이다. 그러나 어찌 되었든 내 시야는 내가 경험하고 감각하는 세상으로부터 멀리 떨어지기 쉽지 않은 것 같다. 적어도 나는 그렇다. 그래서인지, 평범하게 인지할 수 없는 시야로 세상을 바라보는 글을 볼 때면 마음이 복잡해진다. 원자와 전자, 초끈이론이니 양자역학이니 하는 미시세계의 개념들을 처음 접했을 때에도, 반대로 우주와 블랙홀, 차원에 대한 책을 힘겹게 읽어나갔을 때에도, 라캉의 실재계에 대한 수업을 들을 때에도 매번 비슷한 심정이었다. 이건 무슨 마음일까? 신기함과 호기심 밑에 숨어있는 일종의 공허감은 어쩌면 온전한 ‘나’라는 자아가 무의미한 환상이 되어 사라지는 것에 대한 두려움과 무력감에서 비롯되는 것일지도 모른다. 내가 너무 편협한 걸까?
유발 하라리의 <호모 데우스>를 읽으면서 또 비슷한 경험을 했다. 이 책에서 저자는 전작인 <사피엔스>에서부터 이어지는 ‘종으로서의 인간(사피엔스)’의 역사를 바라보는 거시적 관점을 바탕으로, ‘호모 데우스’, 즉 신과 가까운 초인류의 탄생으로 나아갈 인류의 미래를 사유한다.
저자는 지구 생태계에서 별 볼일 없는 위치에 있었던 인간이 지구상에서 지배종이라 불러도 과언이 아닐 지금의 위치를 차지하게 된 요인으로 ‘허구를 상상하고 믿는 능력’을 들면서, 이를 인간 고유의 능력이자 인간의 가장 강력한 힘으로 평가한다.
진화적 과정에서 인지 혁명을 거치면서 얻은 상상력이라는 능력은 다른 어떤 동물들도 해내지 못하는 대규모의 사회적 집단을 구성하고 그들이 하나의 목표를 향해 움직일 수 있도록 유대시키는 강력한 동력으로 작용한다.
<호모 데우스>는 크게 3부로 이루어져 있는데, 그 중 1부와 2부에서는 이러한 인간의 상상력이 어떻게 작동해서 인간 사회를 유지시켜 왔는지 역사적 사례들을 통해 살펴본다. 인간은 상상력을 바탕으로 신, 법, 국가, 돈과 같은 실체가 없는 허구이지만 모두가 신뢰함으로써 존재하게 되는 상호주관적 실재를 형성했고 이를 바탕으로 원시 씨족사회 같은 소규모의 친밀한 집단을 넘어 왕국, 제국과 같은 대규모 사회를 운영할 수 있었다.
저자는 인본주의가 신의 죽음을 선언하고 그 자리에 인류를 놓으면서 근현대의 종교로 작용했다고 본다. 과학은 인본주의와 영합해 인간의 생존과 관련된 기술적 어려움을 해결하고 더 나아가 인간의 행복, 불멸, 신성을 추구하는 방향, 즉 호모 사피엔스에서 ‘호모 데우스’로의 변화를 향해 빠르게 발전해 나갔다. 문제는 이러한 과학과 기술이 역설적으로 인본주의가 종교로서의 힘을 잃게 만든다는 것이다.
‘호모 데우스’를 향해 가는 인류의 미래에 대한 사유가 본격적으로 이루어지는 3부에서는, 단일하고 온전한 자아와 자유의지의 존재가 현대 뇌과학과 심리학 연구에 근거해 명시적으로 부정될 수 있다는 데에서 출발한다. 현대 과학은 인간을 나누어지지 않는 하나의 존재가 아니라 일종의 생화학적 알고리즘으로 이해하게 한다. 즉 생물학을 비롯한 과학의 발전이 (자유주의적) 인본주의의 근간을 무너뜨리는 결과로 이어지는 것이다. 저자는 인본주의의 실패가 곧 기술을 바탕으로 한 전혀 새로운 종교의 탄생으로 이어질 것이며, 이 신흥 기술종교에서 의미와 권위의 원천이 되는 건 정보, 즉 데이터가 될 것이라고 말한다. 그렇다면 알고리즘인 인간은 결국 데이터를 처리하는 한 요소로서 전 지구적 데이터 처리 시스템에 연결되었을 때 유의미해진다. 의미는 인본주의의 주장처럼 어떤 것을 경험하는 개인의 내면에 있는 것이 아니라, 개인이 경험을 공유함으로써 데이터의 흐름을 더하는 데에 있기 때문이다.
이미 인간은 다양한 알고리즘에게 자신의 개인 데이터를 알게 모르게 제공하고 있다. 이 알고리즘을 만들기 시작한 건 분명 인간이지만, 어느 순간 이 모든 데이터와 알고리즘의 총합에서 인간이 창조한 부분은 아주 작은 영역에 불과해지고 전체의 거대한 연결망을 이해할 수 없게 되는 순간이 올 수 있고, 이 거대한 데이터의 흐름, 만물인터넷이 중심이 되는 세계에서 인간은 쓸모없는 존재가 되어 사라질 수도 있는 것이다.
섬뜩한 이야기이지만, 2023년의 시점에서(<호모 데우스>는 2015년 작이다) 이미 꽤나 익숙한 이야기이기도 하다. 내 시청 기록 데이터를 바탕으로 추천 영상을 띄우는 유튜브 알고리즘은 이제 밈과 농담으로 쓰기에도 머쓱할 정도로 익숙하다. 내 핸드폰은 언제든 내 위치 정보를 얻을 수 있고, 그걸 바탕으로 내게 필요할 것이라 예상되는 정보를 제공하는 앱들도 부지기수다.
이 책에 담긴 저자의 통찰력이 날카롭게 번뜩인다고 느껴지는 이유 중 하나는 저자가 던지는 질문들이 지금 여기에서 고민하지 않으면 늦어버리는 종류의 것이라는 데에 있다. 저자는 이 책을 예언이 아닌 가능성에 대한 것으로 읽고, 새로운 방식에 대해 고민하길 바란다고 말하고 있다. 현재의 인류가 처한 문화적, 사회적, 사상적 조건들에서 벗어나 새로운 방식을 찾는 힘을 얻기 위해 빅 히스토리의 관점에서 인간 종의 역사를 살펴봤다는 것이다.
글의 시작에서, 나의 경험적 세상을 벗어나는 넓은 시야를 접할 때 느끼는 공허감과 두려움에 대해 이야기했었다. 결국 나는 ‘나’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한다. <호모 데우스>가 제시하는 장엄하고도 서늘한 인류 미래 시나리오 앞에서, 나는 내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를 가장 많이 생각하는 것이다. 바로 지금 여기, 포스트모더니즘 시대의 흐름 속에서, 한껏 가속화된 과학 발전을 기반으로 급변하는 격동의 세상에서, 나는 어떤 자리에서 뭘 하게 되고 해야 할까. 무겁고도 오래 짊어지고 가야 하는 질문 하나를 얻고 만 기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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