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맛있는 텍스트

청예, <<수호신>>, 네오픽션, 2024.

by 마들렌23 2025. 3. 31.

제목: 수호신

저자: 청예

발행처: 네오북스(네오픽션)

발행일: 2024년 4월 5일

 

청예, &lt;&lt;수호신&gt;&gt;, 네오픽션, 2024.
표지

 


솔직히 말하자면 나는 호러, 오컬트 장르와는 매체의 종류에 무관하게 그리 친하지 않다. 상황에 따라 다르지만 대체로 겁이 많고 징그러운 이미지들을 못 견뎌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호러 오컬트 장르의 영화와 소설을 피할 수 없게 되는 순간이 있다. 영화가 보여주는 분명한 이미지들이 더 무서운지, 혹은 소설의 묘사를 읽으며 머릿속에 직접 상상하는 것들이 더 무서운지는 작품에 따라 다르다. 그래도 대체로 소설 쪽이 좀 덜 무서웠던 이유는 아마도 상상의 수위를 어느 정도 직접 조정할 수 있었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한다.

그런 내가 읽기에 <<수호신>>은 그리 부담스럽지 않은 소설이었다. 분량 자체도 그리 길지 않아서 가볍게 읽어도 괜찮은 소설이었다. 소설의 전체적인 톤이 무겁고 오컬트 장르의 소설인 만큼 어둡고 불쾌할 만한 이야기나 묘사가 없진 않지만 과하지 않았다. 참고로 나는 이 책을 자주 방문하는 단골카페에서 간단한 식사를 하며 틈틈이 읽었는데, 밥 먹는 걸 힘들게 만들 정도는 아니었다고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줄거리는 다음과 같다. 주인공 이원은 대학교 동아리에서 만나 좋아하고 있던 남학생에게 고백을 받은 날 그 남학생이 사고로 사망하는 사건을 겪은 뒤로 흰 소가 나오는 악몽을 계속 꾸고 있다.

동아리 회식 날, 이원은 새로 들어온 설이라는 여학생이 자신과 똑같이 소고기를 전혀 먹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되고 설에게 관심이 생긴다. 이원 역시 어머니가 한때 소를 신으로 모시는 종교를 믿었기에 그로 인해 어린 시절부터 소고기를 절대 먹지 못하고 자랐기 때문이었다.

회식 자리를 슬쩍 빠져나온 이원은 우연히 설과 대화를 나누다 설에게 흰 소가 나오는 꿈을 꾼다는 얘기를 하고, 그에 관심을 보이는 설에게 이끌려 점을 보러 간다.

무당으로부터 자신의 뒤에 신이 너무 많다는 점괘를 받은 지 얼마 되지 않아, 이원을 좋아한다고 고백한 또 다른 동아리원이 사망하는 일이 발생하고, 이원은 두 사람이 죽은 것이 자신에게 붙은 악신의 저주일지 모른다는 생각에 괴로워한다.

그런 이원이 걱정된다며 설은 부산에 있는 AI 승려 우바리를 만나러 가자고 하고, 우교를 믿었던 어머니가 둘의 여정에 합류한다. 이원은 어머니에게 자신의 악몽, 무당의 점사, 우교 등의 관계에 대해 설명을 듣고 싶어 하지만 어머니는 매번 아무것도 알려주지 않고, 이원은 분명하게 설명되지 않는 모든 상황이 답답하기만 하다.

우바리는 이원에게 신과의 연을 끊는 의식을 알려주고, 이원은 그 의식을 실행하지만 이번에는 이원의 오빠가 이상한 상태가 되어버린다.

이원은 자신이 처한 상황이 이해가 되지 않아 점점 더 혼란스러워지고, 이원의 어머니와 우교, 그리고 설의 복잡한 관계가 서서히 드러난다.

이 소설에서 다루는 주요 키워드는 믿음, 원죄 정도로 이야기해 볼 수 있을 것 같다.

이원의 점을 봐준 무당은 이원에게 인간은 태어날 때부터 수호신과 악신 모두와 함께한다고 말하면서, 신을 믿을지 말지는 이원이 정하는 것이라고 한다. 이원은 그 말을 수호신은 믿고 악신은 믿지 않는다는 것으로 이해하지만, 그것은 불가능하다. 이후에 우바리가 말하는 대로, 인간은 자신에게 붙은 신 중 어느 것이 선한 신이고 어느 것이 악한 신인지 구분하지 못하며, 그들은 본질적으로 같기 때문이다.

소설에서는 반복적으로 선과 악은 함께하며 하나가 다른 하나를 따라온다고 말하고 있다. 즉 신의 존재를 믿는다는 것은 완벽하게 선하고 초월적인 존재가 있다는 것만을 믿는 게 아니라, 오히려 선악이 공존하는 세상의 질서를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것에 가깝다.

이것이 원죄라는 키워드와 이어진다. 이원의 탄생 무렵에 있었던 우교의 교주, 이원의 어머니, 이원의 아버지, 우교의 경쟁 종교 집단이었던 사륵교(양을 믿는 종교) 등이 얽힌 복잡한 사연은 결국 이원과 설에게까지 이어져 소설 속 사건들을 불러일으킨다. 이 복잡한 일련의 인과 관계 속에 놓인 사람들은 각자 다양한 양상의 죄를 안고 있다.
자신이 잘못을 하는 줄도 모르고 죄를 지은 사람이 있고, 또 악한 마음을 적극적으로 행동으로 옮김으로써 죄를 지은 사람이 있으며, 태어날 때 일어난 일이 자신의 죄가 된 사람도 있다. 이렇게 각자가 안고 있는 자신의 죄를 어떻게 대할 것인가에 관한 것이 가장 중요한 문제가 된다.

누군가가 정당화하며 감춰둔 자신의 죄는 다른 누군가에게 파멸적인 복수를 하게 만들고, 누군가가 자책하면서도 아무것도 하지 않고 감춰둔 죄는 다른 누군가에게 이해할 수 없는 일들로 상처를 입게 만든다. 각자가 자신의 죄를 어떻게 다루고 그것이 어떤 식으로 다른 이들에게 영향을 미치는가가 이 소설이 주되게 다루는 이야기 중 하나라고 할 수 있다.

용서와 복수는 모두 죄에서 시작되며, 이 두 가지 모두 죄의 인정과 관련된 문제가 얽혀 있다. 용서를 위해서는 가해자가 죄를 인정하고 용서를 비는 행위가 전제되어야 하며, 복수는 자신의 죄를 인정하지 않는 가해자에게 피해자가 강제적으로 사죄를 받아내려 하면서 시작된다. 그러므로 이 소설을 추동하는 것들은 결국 모두 죄의 문제로 연결된다.

특히 그것이 세대를 거치며 내려가 부모 세대의 관계를 자식들이 어떤 형태로든 반복한다는 점에서 선악뿐만 아니라 모든 것이 순환하는 세상의 원리를 드러낸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원 역시 이러한 원죄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이 소설에서 주인공 이원이 겪는 여정은 이 원죄라는, 어쩌면 자신이 적극적으로 저지르지 않아 자신의 죄라고 인정하기 억울한 죄를 자신의 죄라고 인정하고 사죄하고 싶은 마음가짐을 얻는 과정이라고도 할 수 있다.

선한 신과 악한 신이 인간에게는 구분되지 않고, 인간의 양 손에 선한 신과 악한 신이 모두 깃들어 있으며, 인간은 두 신 중 하나의 신에게 인도되어 선택하고 행동하게 된다는 설명은 결국 인간에게 선악이 공존하며, 인간의 선택과 행동이 선한 행위인지 악한 행위인지 인간은 구분하기 어렵다고 말하는 것과 같다.

어떤 행동을 했을 때, 행위자는 그것이 세상에 어떤 형태와 방향으로 영향을 미칠지 정확히 파악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행위자가 선택을 내리고 행위를 하며 세상을 살아감으로써 세상에 알지 못하는 선한 영향이 있었다고 말할 수 있다면 반대로 그만큼 알지 못하는 악한 영향도 있었을 것이고, 그러한 가능성까지도 인정하고 사죄하는 마음을 갖는 것. 저자는 그것이 신앙이고 믿음이라고 설명한다.

이 지점에서 믿음과 원죄라는 두 키워드가 융합된다. 이는 이원이 상황이 악화되자 다시 찾아간 무당에게서 들은 말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저지르지 않은 죄까지 속죄하는 일은 보이지 않는 면까지 굽어살피겠다는 헌신이다. 신은 스스로 헌신하는 자를 사랑하지. 그러니 사는 동안 반성과 속죄를 이어가는 일은 선신이 너에게 손을 내밀어 가호할 명분을 주는 일, 결국 가장 완벽한 믿음이다. 그러나 사람은 저지르지 않은 일은 사과할 수 없다 하고, 확실히 저지른 죄조차도 부정하는데 어찌 선신이 힘을 쓸 명분이 있겠어?”(192)

무당의 말을 잘 이해하지 못하고 반발하는 마음을 가지던 이원은 모든 사건이 끝난 뒤 그 말을 이해하게 된다.

“저주를 인정하고, 수호신과 대등한 악신을 인정하고, 기억에 없는 악행을 인정하고, 내 어깨 위의 원죄를 인정하는 일. 이 불합리한 과정을 포용하는 믿음으로 나는 최후의 신앙을 보았다. (...) 해야 할 말을 하겠다는 이 의지는 과거에 내가 절대 갖지 못했던 마음이었다. 납득하지 않으려는 마음과 내 잘못이 아니라는 비겁한 외면을 모두 내려놓고, 가장 가뿐한 몸짓을 해내는 운동선수처럼 모든 일의 원인이 나에게 있다고 말해도 원망하지 않겠다는 성직자의 가슴으로.”(218)

이원은 자신 몫의 사과를 하고, 그럼으로써 저주로부터 해방된다.

이 소설은 주인공 이원이 신의 존재에 대한 믿음과 부모 세대부터 얽혀 있는 죄의 고리들을 깨닫는 여정을 그리고 있다. 주제가 주제이니만큼 조금 독특하게 다가왔던 부분은 소설에 등장하는 승려 우바리라는 존재였다.

우바리의 정체는 소설 최후반부에 밝혀지는데, 어느 쪽이든 꽤나 SF적인 요소라고 느껴져서 흥미로웠다. 오컬트 장르에도 자연스럽게 스며들 만큼 SF, 특히 AI와 안드로이드 관련된 소재가 대중화되었다는 생각도 들고, 종교와 AI의 연결이 여러 모로 재미있다고 생각했다.

이야기 자체가 빠르게 진행되고 분량도 길지 않아 가볍게 즐기려는 독자들, 오컬트 호러 장르에 익숙하지 않지만 살짝 발을 담가 볼까 하는 독자들에게 추천할 만한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