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한 스푼의 시간
저자: 구병모
발행처: (주)위즈덤하우스
발행일: 2016년 9월 5일
구병모 작가는 <<위저드 베이커리>>로 제2회 창비청소년문학상을 수상하며 등단했고, <<아가미>>, <<파과>> 등의 장편소설과 여러 편의 단편 소설집을 낸 작가로, 길게 늘어지는 말하기를 글자로 옮겨놓은 듯한 독특한 문체가 특징적이다. 또 신기하고 때로는 기괴하게까지 느껴지는 환상적 소재들을 자주, 잘 활용하는 작가로 이러한 특징은 데뷔작인 <<위저드 베이커리>>에서부터 유구하게 이어져 오는 듯하다.
나 역시 <<위저드 베이커리>>로 저자의 작품을 처음 접한 뒤, 저자의 독특한 스타일에 빠져들어 한동안 저자의 다른 소설들도 열심히 찾아 읽었는데, <<한 스푼의 시간>> 역시 그러한 과정에서 알게 된 작품이다.
<<한 스푼의 시간>>은 기괴한 환상이라고 할 만한 요소가 거의 드러나지 않는다는 점에서 저자의 여타 작품들과 차이를 보이긴 하지만, 저자 특유의 문체와 결코 밝지 않은 에피소드들을 비정하다고 느껴질 정도로 담담하게 전달하는 서술이 작품의 독특한 분위기를 형성하고 있다.
<<한 스푼의 시간>>은 17살 소년 모습의 인간형 로봇인 은결이 명정의 세탁소에서 지내면서 인간의 감정과 삶에 대해 배워가는 이야기이다. 어느 날 명정에게 몇 년 전 미국에서 살다 실종된 아들로부터 택배가 온다. 그 택배 안에는 소년 형태의 안드로이드가 하나 들어있었는데, 아들이 다니던 회사에서 샘플로 제작한 로봇으로 현재 회사는 망해 사라졌으므로 이 로봇은 망가지면 수리받을 수도 없었다. 명정은 로봇에게 은결이라는 이름을 붙여주고 은결을 데리고 지내기로 한다. 은결은 명정의 세탁소 일을 도우며, 세탁소에 찾아오는 손님들과 차츰 교류하게 된다. 특히 은결이 처음 배달 왔을 때 영어로 인해 어려움을 겪는 명정을 도와준 세주, 세탁소에 자주 심부름을 오는 아이들인 시호와 준교, 그리고 자신의 주인인 명정을 관찰하고 때로는 대화하면서 인간의 삶과 감정에 대해 조금씩 배워나간다.
사실 인공지능 혹은 로봇이 감정을 배운다는 식의 설정은 (작가의 말에서 저자 스스로도 말하듯이) 이 소설이 출간된 당시인 2016년에도 이미 참신하다고 하기엔 어폐가 있었다. 2025년이 된 지금은, 어쩌면 로봇이 감정을 가지게 된다는 설정이 너무 익숙하고 흔해서 더 이상 이에 대해 길게 설명하거나 그 과정과 경험만으로 장편 소설 한 권을 채워야 할 필요성이(SF라는 장르가 발전하는 과정에서 SF 장르를 향유하는 이들에게 혹은 시대에게 바라는 필요라는 것이 있고 그것이 시대와 사회의 변화에 따라 변한다고 했을 때) 거의 사라진 것 같아 보인다.
하지만 인간보다 더 인간다운 인공지능 혹은 로봇이라는 개념에 대해 우리는 정말 충분히 이해하고 고민해 본 게 맞을까?
개인적으로 이 소설에서 가장 특징적으로 느껴진 요소이자 높이 사게 된 점이 있다면, 감정을 배워나가면서 서서히 변화하는 로봇의 내면 서술을 끈질기게 시도하고 있다는 점이었다. 감정을 배운 로봇이라는 소재는 클리셰일 수 있으나, 이 소설에서 다루는 로봇은 정확히 말하자면 감정을 ‘배운’ 로봇이 아니라 감정을 ‘배워 가는’ 로봇이다.
이 소설에서 다루는 로봇의 감정은 어느 한순간 불현듯 깨달음처럼 생기는 것이 아니다. 로봇인 은결이 인간들의 다양한 감정과 삶을 직접 접하고 교류하면서 아주 서서히 생기는 변화이다. 소설은 그 지난하며 모호한 로봇의 상태변화를 최대한 로봇의 관점에서 상상하며 서술하고자 시도하고 있다.
애초에 로봇인 은결이 인간의 감정, 더 나아가 인간의 인생이라는 것을 이해하는 과정을 탐구하는 것이 목적인 소설인 만큼, 이러한 작업은 당연히 이루어져야 하는 것이라고도 할 수 있지만, 인간이 아닌 은결의 내면을 상상하고 서술하는 작업은 어려움이 많은 작업이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이를 시도함으로써 로봇의 감정이라는, 누구도 아직 정확히 알 수 없는 것에 대한 고민을 회피하지 않고 최대한 부딪쳐 보고 있는 작품이라는 점이 인상적이었다.
로봇이 스스로 이해하지 못하는 감정을 경험하고 배워나가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소설은 은결의 기계 몸이 겪는 비정상적인 작동, 오작동과 과잉 반응을 묘사한다. 슬픔, 설렘과 같은 직접적인 단어를 사용하지 않음으로써 은결이 느끼고 경험하는 것을 감정이라고 단정 짓지 않으려 하고, 대신 은결 스스로도 원인을 알 수 없는 회로의 불필요한 스파크나 모터의 과잉 작동을 제시하는 식이다.
인간의 육체와는 전혀 다른 체계의 시스템이지만 궁극적으로 은결이 기계 몸의 감각 경험에 뿌리를 두고 감정을 배워나가는 묘사는, 반대로 저자가 이해하는 인간의 몸-감각과 감정의 상관관계를 드러내는 것이기도 하다. 또한 로봇의 감각(혹은 감각 반응)이란 인간과 같을 수 없을 것이지만 감정(혹은 인간성)을 배워나가는 과정은 인간과 같을 수밖에 없다는 주장으로 보이기도 한다.
소설 제목의 바탕이 되기도 한 ‘세제 한 스푼’의 비유는 우주적인 관점에서 인간의 삶이란 세제 한 스푼이 물에 녹는 것과 같다는 명정의 말에서 나온 표현인데, 소설에서 여러 가지 의미를 내포한다.
서서히 물에 녹아내리는 세제의 이미지는, (앞에서도 언급했듯 어떤 갑작스러운 깨달음의 순간에 한 번에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천천히 스미듯 일어나는 은결의 변화를 비유적으로 드러낸다.
또한 물에 닿으면 녹아서 형체도 없이 금세 사라져 버리는 가루 세제의 이미지가 주는 허망함의 감정은 나이가 들어 죽음으로 향해가는 명정의 상태와 호응한다.
나름의 사연과 의미와 감정을 짊어지고 다사다난하게 살아온 인생이지만, 우주라는 큰 질서, 죽음이라는 거스를 수 없는 자연의 질서 앞에서 그 모든 것들은 아무것도 아닌 것이 된다.
하지만 물에 녹아 금세 사라진 가루 세제 한 스푼의 ‘별 것 아님’ 뒤에는, 그 잠깐의 시간 동안 세제 한 스푼이 물에 녹기까지 이루어지는 물과 세제와 빨랫감 사이의 (비록 눈에 잘 보이지는 않더라도) 강렬한 화학반응이 숨겨져 있고 그것은 지저분한 빨래가 깨끗해진다는 변화로 이어진다.
결국 인간의 삶이란 덧없고 허망하면서도 그 안에 각자가 겪는 격렬하고 치열한 ‘화학반응’이 있으며, 그것은 한 인간이 인생을 살아내면서 어떠한 형태로든 세상에 미칠 아주 작고 보잘것없는 영향 혹은 변화로 이어진다는 것을 말하고 있는 것과 다름 아니다.
이것은 소설의 최후반부, (스포일러 주의!) 은결이 스스로를 물에 잠기게 하는 장면과 이미지적으로 연결된다.
명정이 죽은 뒤 혼자 남겨진 은결은 집안을 정리하다 명정이 마지막까지 쓰던 이불을 발견한 뒤 욕조에 물을 받고 세제를 풀어 발로 밟는 고전적인 방법으로 이불을 빨기 시작하고, 곧이어 욕조 물에 자기 자신을 가라앉히는 일종의 자살과도 같은 행위를 한다.
처음에는, 은결이 이불 빨래를 하면서 떠올린 명정과의 대화 내용이 사람의 마음이 무너지는 것과 자살에 대한 것이었으므로 은결 역시 그와 유사한 기분을 느끼고 자기 파괴적인 행위를 한 것으로 자연스럽게 읽었다. 하지만 곱씹어 생각해 보면, 인간이 아닌 은결은 세제 한 스푼 같은 생애를 가지지 못한 유일한 캐릭터인데, 그런 캐릭터가 세제가 풀어진 물에 스스로의 몸을 잠기게 하는 장면의 이미지는 물에 녹아내린 세제 즉 인간의 삶에 아주 근접하게 다가간다는 의미로 읽을 수도 있다.
물에 빠진 은결은 시호와 준교의 구조로 ‘죽지 않고’ 조금 망가진 기계 몸으로 계속 ‘살아갈’ 수 있게 된다. 상징적으로 이 장면에서 이전의 은결은 죽고, 새롭게 다시 태어난다. 그러나 동시에 결국 완전히 ‘한 스푼의 세제’가 되지는 못한 것이기도 하다. 그래서 이후에 그려지는 은결의 모습은 인간이 아니지만 한없이 인간다운 존재가 된, 평범한 인간보다 훨씬 오래 존재하고 있지만 시간성 안에 살아가는 인간을 이해하는 낡은 로봇의 모습이 되는 것이다.
더하여 이런 결정적인 변화의 계기가 명정=가족의 죽음을 경험하고 그로 인해 겪는 상실감 혹은 절망과 같은 인간의 가장 무겁고 어두운 감정이라는 점 역시 상기할 만하다.
로봇이 주인공인 이야기이자 로봇의 인간적인 성장기를 그리는 소설이지만, 그렇기에 더더욱 인간의 삶에 대해 탐구하려는 시도가 돋보이는 소설이기도 했다.
노년의 명정, 이제 막 아이를 낳아 기르는 중인 세주, 그리고 은결의 겉모습보다 어린 나이에 처음 만나 성인이 될 때까지 인연을 이어간 시호와 준교, 이렇게 다양한 연령대의 다양한 사람들이 은결의 주변에 배치되어 있어, 은결은 인간이 아닌 존재로서 다양한 인간의 삶을 관찰하고 학습할 수 있었다.
그리고 은결의 시선을 따라 독자 역시 이들의 삶을 따라가며, 살아간다는 것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게 된다. 그들의 삶은 결코 부유하거나, 원만하거나, 아름답지만은 않다.
주인공인 은결 역시 수리가 불가능한 낡은 로봇인 상태로 남아 있음에도, 소설을 끝까지 읽은 후 남는 느낌은 알 수 없는 따뜻함이다.
아직 세제 냄새가 남은, 햇볕의 흔적이 남은 빨래가 주는 온화함이 있는 작품이었다고 말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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