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스토리텔링 애니멀 (인간은 왜 그토록 이야기에 빠져드는가)
저자: 조너선 갓셜
옮긴이: 노승영
발행처: (주)민음사
발행일: 2014년 4월 25일
<<스토리텔링 애니멀>>은 사실 꽤나 유명한 책이다. 원서가 2012년에 출간된 만큼 다루고 있는 내용이 2024년의 관점에서 봤을 때 완전히 처음 접하는 내용이거나 새로운 내용이라고 할 수는 없다.
인용하고 있는 심리학 실험들 역시 이미 접해본 내용이 많고, 저자의 주요 주장, 즉 인간은 그것이 진화적으로 생존에 유리했기 때문에 이야기를 선호하도록 진화해 왔다는 것은 이제는 각종 작법서나 글쓰기 관련 책들, 혹은 사회과학 교양서나 심지어 비평 이론서에서도 한 번 이상은 들어봤을 법한 말이 되었기 때문이다.
일례로 유발 하라리도 <<사피엔스>>에서 이 책을 인용하고 있고, 이야기의 본질을 이야기하는 많은 소설 작법서들에서도, 이 책의 저자가 말하는 이야기의 공식(이야기=인물+어려움+탈출 시도, 책의 3장에서 다루어진다)이 심심치 않게 인용되곤 한다.
너무 유명한 고전들은 이곳저곳에서 내용과 해석까지 이미 너무 많이 접하는 바람에 자신이 실제로 읽은 경험이 없는데도 마치 읽은 것처럼, 나아가 다 이해한 것처럼 여기게 되는 경우가 있다. 이 책도 비슷한 느낌이었다. 그런 만큼 오히려 언젠가는 전체 내용을 읽어봐야겠다고 생각하던 책이기도 했다.
여러 책에서 인용되고 있는 부분은 책의 일부 논의였기 때문에 저자의 세부 논의와 책의 전체적인 흐름이 궁금했고, 또 직접 읽고 소화해 보려 애쓴 결과가 기존에 알고 있던 내용과 별반 다르지 않더라도 읽는 과정 자체에 나름의 의미가 있을 것이라고도 생각했다. 해서 이번 글에서는 책 전체의 내용을 장별로 요약 정리해보려 한다.
1장에서는 책에서 다룰 다양한 영역을 소개하는 개요의 역할을 수행한다.
이야기를 읽을 때 인간의 머릿속에서 일어나는 창의적인 상상의 과정에 대해 이야기하고, 이러한 이야기가 비단 픽션의 영역에서만이 아니라 인간의 꿈, 아이들의 놀이, 저널리즘, TV 쇼, 종교 등 수많은 영역에 그 영향력을 미치고 있다는 점을 언급한다. 이러한 이야기 선호 경향은 진화적 과정에서 살아남았으며, 이는 곧 (이야기를 만들어내고 소비하는 행위는 낭비적이라는 직관적인 느낌과는 달리) 이것이 생존에 유리한 특성임을 이야기한다.
2장에서는 이야기가 진화적 관점 즉 자연에서 생존하기 위해 필요한지에 대한 의문에서 시작한다.
2장 역시 개요의 역할을 하고 있는데, 이 책의 중심 질문이라 할 수 있는 인간의 스토리텔링 능력이 지닌 진화적 이점이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제시하는 장이다.
이야기는 “진화적 적응”(진화적 설계에서 스토리텔링이 인간 종의 생존에 주요한 역할을 했다)일 수도 있고, “진화의 부산물”(스토리텔링은 진화적으로 주요한 역할이 있는 것이 아니라 진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생긴 것일 뿐, 그 자체로 기능이나 역할을 가지고 있지는 않다)일 수도 있다.(54)
또 아이들이 흉내 놀이를 하면서 만드는 이야기에 다양한 형태의 말썽, 즉 사건이 있음을 지적하며 갈등이 있는 이야기에 대한 인간의 집착이, 스토리텔링이 인간에게 미치는 신비하고 강력한 영향력에 대한 설명의 실마리가 될 것이라고 주장한다.
3장에서는 픽션의 사건에 대해 다룬다.
픽션은 “현실 도피적 오락”(74)으로 흔히 여겨지지만, 역설적으로 우리는 픽션 안에서 더욱 험난한 말썽과 문제들을 경험한다. 문제없이 소원만 이루어지거나, 평범한 일상만 이어지는 식의 이야기는 재미가 없다. 즉 “픽션의 주제는 말썽이다.”(78)
이야기의 기본 공식은, 문제가 있는 인물이 어떤 것을 간절히 원하지만, 그것을 이루는 데 장애물(어려움)이 있고, 그것을 극복하거나 대가를 치르며 원하는 것을 성취하려 애쓰는 것이다(이야기=인물+어려움+탈출 시도).
이러한 이야기의 구조에서 벗어나기 위한 움직임(모더니즘 운동)이 있기도 했지만, 아주 오래된 과거로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이야기에는 일종의 보편 문법이 존재하며, 또한 몇 가지 주요 주제가 있으며, 사람들은 이를 선호하고 즐긴다.
저자는 이러한 구조가 “스토리텔링의 주 기능을 보여준다고 생각한다. 이는 사람의 마음이 이야기를 위해 형성되었고, 따라서 이야기에 의해 형성될 수 있음을 의미한다”(82)고 말하고 있다.
즉 인간은 이야기를 통해 인간의 문제를 시뮬레이션하고 연습하도록 진화했다는 것이다. 거울 뉴런의 존재 역시 이러한 주장을 뒷받침한다. “픽션이 허구임을 알더라도 정서적 뇌는 픽션을 현실처럼 처리”(88)하며, 이 과정은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상관없이 일종의 훈련으로 작용해 문제 해결을 위한 뉴런 회로를 강화하는 결과를 낳는다. 따라서 “우리가 픽션에 매력을 느끼는 이유는 진화적 결함 때문이 아니라 픽션이 전반적으로 우리에게 이롭기 때문이다. (...) 픽션은 예나 지금이나 종으로서 인류가 성공하는 데 더없이 중요한 과제들에 반응하도록 뇌를 연습시킨다.”(93-94)
4장에서는 꿈이라는 현상을 3장에서의 ‘이야기=시뮬레이션 훈련’ 관점으로 설명한다.
꿈은 아주 오랜 인간의 역사 속에서 영적 세계의 메시지처럼 여겨져 오다 20세기 들어서야 프로이트와 정신분석학에 의해 무의식의 메시지로 보는 관점이 생겨났다. 그러나 현대의 꿈 연구자들은 정신분석학파에서 제시한 (지나치게 자의적인) 꿈 해석에 반대하며, 꿈의 존재 목적을 찾으려 한다.
무작위 활성화 이론(random activation theory, RAT)은 “꿈은 잠자는 뇌의 온갖 유용한 활동에서 배출되는 쓸모없는 부산물”(102)이라고 설명한다. 뇌의 스토리텔링 회로는 이 부산물에 아무 의미가 없다는 것을 알지 못한 채 마치 정상적 정보를 다루듯 일관된 서사를 부여하려 하기 때문에 꿈을 꾸게 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RAT에는 많은 반론도 존재한다. RAT는 꿈의 괴상함에만 지나치게 초점을 맞추기 때문에 꿈이 가진 정교한 구조는 설명하지 못한다는 비판이 있다. 또 우리는 렘수면 상태일 때 근육의 긴장이 약해지는 무긴장증 증세를 가지기 때문에 꿈에서 격렬한 활동을 해도 잠자는 몸이 뇌의 움직이라는 명령을 따르지 않는다.
진화적 관점으로 봤을 때, 꿈이 쓸모없는 부산물일 뿐이라면 꿈을 꾸지 않는 방향으로 진화하는 것이 더 간단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꿈을 꾸는 현상은 유지된 채 뇌간에서 뇌의 운동 명령을 차단하는 방식으로 진화한 이유를 RAT는 설명하지 못한다.
게다가 꿈은 인간의 전유물이 아니며 동물들도 꿈과 무긴장증을 가지고 있는데, 이는 꿈이 그만큼의 진화적 가치가 있음을 의미한다.
1950년대 프랑스의 꿈 연구자 미셸 주베는 고양이의 뇌간에 적당한 손상을 입혀 무긴장증을 없앤 뒤 고양이가 자는 동안 뇌 활동을 모니터링함과 동시에 고양이의 모습을 촬영하는 실험을 진행했다.
이 실험에서 고양이는 렘수면 상태가 되자 꿈을 꾸며, 무긴장증이 사라졌기 때문에 실제 몸으로 사냥 행동을 하거나 방어 행동을 하는 모습을 보였다. 이 실험은 꿈이 “사람과 동물이 삶의 거대한 문제에 대처하는 법을 연마하는 가상현실 시뮬레이터”(107)일 가능성을 제기한다.
사실 꿈의 내용은 정서적, 신체적 위험으로 가득 차 있으며, 이는 인류 보편적인 현상이라는 점 역시 이러한 추측을 뒷받침한다.
저자에 따르면 2장에서 다룬 아이들의 흉내 놀이, 3장의 픽션, 4장의 꿈은 모두 말썽(사건)을 다룸으로써 현실의 삶에서 만날 지도 모를 말썽에 대처하는 가상훈련으로 작용한다는 점에서 진화적 가치를 가진다. “말썽은 흉내 놀이, 픽션, 꿈의 환상들을 하나로 묶는 굵고 붉은 실이다. 말썽은 이 모든 활동에 공통된 기능, 즉 ‘삶의 커다란 문제에 대처하는 연습’을 해명하는 단서이다.”(113)
5장에서는 이야기하는 마음에 대해 다룬다. 앞에서 언급된 뇌의 스토리텔링 회로에 대한 이야기이다.
인간의 뇌는 감각을 통해 받아들인 외부의 정보들을 바탕으로 의미를 만들어내려는 경향성을 가지고 있다. 이런 스토리텔링 회로는 뇌의 좌반구에 위치하고 있는데, “이 신경 회로의 임무는 정보 흐름에서 질서와 의미를 찾아내 일관된 경험 기술, 즉 이야기로 짜 맞추는 것”(127-8)이다.
인간의 뇌가 이런 기능을 가지고 있도록 진화하게 된 것은 세상이 실제로 다양한 이야기(음모, 책략, 제휴, 인과 관계)로 이루어져 있고 그것을 파악하는 것이 생존에 유리했기 때문이라고 저자는 주장한다.
그러나 이러한 이야기하는 마음은 그만큼 의미를 부여하려는 경향성이 강해서, 실제로 의미 있는 패턴이 아닌 곳에까지도 의미와 이야기를 부여하기도 한다. 마치 얼굴과 유사하지만 얼굴이 아닌 자극에 인간의 인식이 과잉 반응해서 얼굴을 보는 것과 유사하게, “우리의 상상력은 사건의 패턴을 이야기로 인식”(134)하며 “무의미한 몽타주에 (...) 이야기 구조를 부여”(138)하고자 말을 지어낸다.
이렇게 질서를 부여하고 이야기로 의미를 추구하는 경향이 극단으로 간 예시로 저자는 음모론을 들고 있다. 음모론은 “픽션과 구조가 유사하기 ‘때문에’ 상상력을 사로잡”(141)고, 그렇기 때문에 단순히 멍청한 사람들의 문제 혹은 극단적인 광신도들의 문제만은 아니라는 것이다.
6장부터 8장까지는 좀 더 심화된 논의가 이어진다. 이야기가 현실과 가상의 경계를 넘어 실제 세계(개인과 사회)에 영향을 미치는 방식에 대한 논의라고 할 수 있다.
6장에서는 종교와 신화에서 이야기의 역할에 대해 다룬다.
저자는 종교와 신화를 성스러운 이야기라는 관점으로 바라본다. 종교는 인간 종에게 보편적인 현상이다. 그러나 왜 인간은 종교적인 존재로 진화했을까? 저자는 인간의 이야기하는 마음이 설명의 공백을 메우기 위해 만들어 낸 부산물로 종교를 바라보는 관점에서 더 나아가 종교의 진화적 쓸모에 대해 이야기한다.
종교가 사회 기능을 향상시키는 역할, 즉 “사람들을 하나로 묶고 집단의 이익을 자신의 이익보다 우선시하도록 하는” 진화적 기능을 한다는 것이다. 사회 결속의 측면에서 본다면 애국심을 고취시키는 국가 신화 역시 종교와 유사한 역할을 한다.
이야기의 사회적 기능이라는 관점에서 보자면, 이야기는 또한 윤리 도덕적 사회 규제의 역할도 수행한다. 저자는 사람들이 이야기에서 다양한 것을 상상하지만 그와 동시에 “상상력의 유연성은 도덕적 영역까지 연장되지는 않는다”(161)고 주장한다.
비도덕적이고 혐오감이 드는 행위나 관계가 이야기에 등장하는 경우는 많지만, 동시에 그에 대한 이야기꾼의 비판/비난적 뉘앙스가 없거나 악행에 대한 처벌이 없으면 안 되며 그런 경우 사람들은 거부감을 느낀다는 것이다. 즉 “관습적 도덕주의의 일반적 패턴”(166)이 이야기에 존재하며, “이야기의 도덕성이 [인간 본성의 일부인-글쓴이 주] 도덕적 충동을 반영할 뿐 아니라 ‘강화’한다”(166).
이러한 저자의 주장에 따르면, 이야기의 문제 구조가 인간의 이야기 본성이 가진 문제 상황의 시뮬레이션이라는 생물학적 기능을 드러낸다면, 이야기의 도덕주의 역시 “윤리적 행동을 장려함으로써 사회의 기능을 향상”(166)하는 이야기의 또 다른 기능을 드러낸다는 것이다.
이야기를 접하는 방식이 매체의 발달에 따라 달라져 오고 있으며 이에 따라 이야기를 즐기는 방식이 점점 개인적으로 변하는 등 이야기의 공동체적인 성격이 변화한 것 역시 맞지만, 여전히 “이야기는 공통의 가치를 강화하고 공통의 문화라는 매듭을 단단히 매어 사회를 결속하는 고대의 기능을 여전히 수행한다.”(170)
7장에서는 마찬가지로 이야기가 개인의 내면뿐 아니라 사회적인 변화를 발생시키는 경우에 대해 다룬다.
히틀러가 어린 시절 바그너의 오페라를 보고 이념적인 영향을 강하게 받은 사례, <<톰 아저씨의 오두막>>이 미국 남북 전쟁으로 이어지는 사회 분위기 조성에 역할을 한 사례 등을 통해 이야기가 개인과 사회를 변화시키고 형성하는 것이 단순히 일화적인 사례들에 국한된 것인지 혹은 이야기 자체가 가지는 영향력인지에 대해 질문을 던진다.
심리학 실험을 통해 밝혀진 바, 이야기는 인간의 마음과 행동과 성격을 변화시키는 데 영향을 미친다. 우리는 우리 자신이 픽션에서 얻은 정보와 논픽션에서 얻은 정보를 구분해서 저장한다고 여기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 또 픽션의 정서와 사상은 전염력이 강해서 개인의 신념과 가치 판단에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실험 결과도 있다.
왜 이런 현상이 일어나는지에 대해, 저자는 이야기를 대할 때 인간이 정보를 처리하는 방식이 달라지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이야기에 몰입했을 때 우리는 감정이 움직이게 되면서 (정보를 전달하는 논픽션을 볼 때는 흔히 견지하는) 비판적 태도를 내려놓고, 애초에 틀린 점을 찾지 못할 정도로 이야기에 부합하는 방향으로 변화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픽션은 개인과 사회를 형성하는 주요인이다.”(187)
8장에서는 인간이 스스로 인식하는 기억에 대해 다룬다.
인간이 인식하는 자기 삶의 기억 역시 일종의 삶 이야기로 보고, 객관적 서술이기보다는 자기 자신을 설명하는 일종의 “개인 신화”(198)라고 설명한다.
인간의 기억은 그리 믿을만하지 않으며, 다른 기억보다 선명하게 저장될 것 같은 강렬하고 충격적인 경험의 기억 역시 시간이 지나면서 계속 변화한다는 것이 실험을 통해 드러났다. 또한 엘리자베스 로프터스 연구진은 “기억체계가 암시에 의한 오염에 얼마나 취약한가”(204)에 대한 연구를 진행하면서 암시나 최면 등을 통해 기억을 만들어 심을 수도 있음을 확인했다.
저자는 우리의 기억은 “비디오테이프를 재생하는 일이 아니다. 뇌 곳곳에 흩어진 자료 조각들을 모으는 일”(206)이자, 이 자료 조각들을 인간의 이야기하는 마음 혹은 시뮬레이션 회로가 꿰어 맞추어 재구성한 것이라고 설명한다.
즉 “기억은 완전한 허구는 아니지만 원본이 아니라 각색에 불과하다.”(206)
하지만 저자는 기억의 목적이 정확한 기록이 아니라 더 나은 삶을 살도록 하는 데 있다면, 이러한 기억의 불완전성은 결함이 아닐 수 있다고 말한다. 우리는 과거를 잘못 기억함으로써 각자의 삶 이야기의 주인공 자리를 유지한다는 것이다.
연구에 따르면 일반적인 사람들은 대개 자신을 과대평가하고 있으며, 이러한 자기 과장은 어린 시절부터 시작된다. 이와 반대되는 경우는 자기 자신에 대한 긍정적인 환상을 잃어버린 우울증 환자들이다.
즉 “건강한 마음은 스스로에게 입에 발린 거짓말을 하는 마음”이며, 우울증은 “자신에게 거짓말을 하지 않”아 생겨난 “자신에 대한 부적절한 서사”(212)로 인해 발생하는 건강하지 않은 상태다. 이런 관점에서 봤을 때 “임상 심리학자는 환자가 다시 주인공 역을 맡을 수 있도록, 물론 고통받고 흠이 있기는 하지만 그래도 빛을 향해 나아가는 주인공이 될 수 있도록 삶 이야기를 고쳐 쓰게끔 도와주는 일종의 편집자”(213)로 볼 수 있다.
이러한 관점에서 본다면 우리는 “일관된 실재”라기보다는 “이야기하는 마음의 위대한 걸작”, “우리가 만들어 낸 상상의 산물”이다. “집필 중인 소설처럼 우리의 삶 이야기는 신뢰할 수 없는 소설가의 손에 의해 늘 바뀌고 발전하고 편집되고 개작되고 윤문 된다.
우리는 많은 부분 우리 자신의 개인적 이야기이다.”(213)
9장에서는 픽션, 더 나아가 스토리텔링의 미래에 대해 논의한다.
소설은 죽었다는 선언에 관해, 저자는 소설의 종말이 곧 이야기의 종말은 아니라고 말한다. 이야기 역시 진화하며, 환경의 요구에 따라 전달되는 형태와 매체의 변화에 적응하며 끊임없이 이어진다는 것이다. “이야기의 ‘본질’은 변하지 않는다.
스토리텔링의 기술은 구술에서 점토판으로, 육필 원고로, 인쇄 서적으로, 영화로, 텔레비전, 킨들, 아이폰으로 진화했다. 그때마다 비즈니스 모델은 만신창이가 되지만, 이야기가 근본적으로 달라지는 일은 없다.”(226)
저자는 스토리텔링의 미래를 <스타 트렉> 시리즈의 홀로 데크와 같은 모습일 것이라 상상한다. 이제 이야기의 독자는 이야기 속에 직접 입장해 등장인물이 되어 직접 체험하는 “쌍방향 픽션”으로 진화한다는 것이다.
현대의 MMORPG가 이와 유사한 방향성을 보인다. “MMORPG 세계는 단순히 별개의 물리적, 문화적 공간이 아니라 이야기 공간이다. (...) MMORPG에서 우리는 고전적 영웅 이야기의 등장인물이 될 수 있다. (...) MMORPG를 하는 것은 ”쓰이고 있는 소설 속에서“ 살아가는 것과 같다.”(233) 이러한 MMORPG의 가상세계는 이야기로 말미암아 의미가 풍부한 세계이기 때문에 우리가 현실에서 충족하지 못하는 욕구들, 이를테면 공동체 소속감, 자신감 등을 충족시켜 주고, 그래서 사람들은 MMORPG에 빠져든다.
즉 “가상 세계는 소외에 대처한 결과”(236)이자 “현대 사회의 황량함에서 벗어나기”(237) 위한 방법이다.
하지만 동시에 저자는 이야기에 탐닉하는 인간의 경향성이 마치 과식하는 습성처럼 인간에게 유해한 방향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점을 우려한다. 인간의 과식 습성은 진화적으로 생존에 유리했기 때문에 이어져 왔지만, 현대의 식문화에서 과식 습성은 건강에 유해한 영향을 끼친다.
이와 마찬가지로 이야기에 탐닉하는 인간의 습성이, 이야기가 넘쳐나는 현대 사회에서 인간이 이야기를 과소비하도록 만들어 인간이 이야기에 잡아먹히게 되는 것은 아닌지 주의해야 한다는 것이다.
저자에 따르면 우리는 스토리텔링 애니멀, 이야기의 동물이다. 우리는 천성적으로 이야기를 좋아하도록 타고났고 이야기에 강력한 영향을 받는다. 또 이야기 속의 보편적 문법을 선호하고 이를 즐기며 여기서 위안을 얻는다.
이러한 경향성은 우리에게 삶의 문제를 연습하는 훈련의 기회를 제공함으로써 긍정적으로 작용할 수도, 우리의 사고를 편향되거나 비이성적인 방향으로 이끌어 부정적으로 작용할 수도 있으므로 이를 알고 있는 것이 중요하다.
우리가 이야기를 경험하는 방식은 변화해 왔으며 앞으로도 변화할 것이지만, 이야기 자체는 우리가 이야기의 동물로 남아있는 한 어떤 형식으로든 이어질 것이다.
그러므로 이 모든 것들을 이해한 뒤에도 이야기는 여전히 매력적일 것이므로 충분히 즐기자는 말로 저자는 책을 마무리한다.
이 책의 한국어 부제는 ‘인간은 왜 그토록 이야기에 빠져드는가’라고 번역되었는데, 원문 제목은 ‘How stories make us human’으로 직역하면 ‘어떻게 이야기가 우리를 인간이게 하는가’ 정도가 되지 않을까 싶다.
이 책에서 저자는 이야기 선호 경향성, 이야기를 만들고 수용하는 인간의 행위가 진화적 관점에서 인간 종뿐만 아니라 개개의 인간을 구성하는 데 중요한 요소라고 본다.
저자는 이야기 능력이 인간에게 진화적으로 왜 필요했는지에 대한 논의에서 시작해, 이야기가 개별 인간과 사회에 미치는 영향까지 확인하면서 이야기가 우리의 삶 전반에 얼마나 장대한 영향력을 미치고 있는지 역설한다.
저자는 이를 위해 다양한 심리학 실험과 일화들, 때로는 문학 작품과 그와 관련된 역사적 사건들까지 다양하게 아우르며 다루고 있다. 전체적으로 서술이 어렵거나 지나치게 학술적이지 않아 교양서로도 충분히 흥미롭게 읽을 수 있는 책이다.
또한 각 장의 가장 앞부분에서는 항상 흥미로운 이야기의 한 장면으로 시작되는 구성이나 간간이 드러나는 저자의 재미없는 농담 역시 책을 읽는 내내 즐거움으로 다가왔다. 스토리텔링, 심리학, 진화비평, 빅 히스토리 등의 다양한 영역에 걸쳐져 있는 책인 만큼 어떤 분야에 관심을 가진 사람이 읽어도 흥미롭게 읽을 수 있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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